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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해묵은 논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재 국제 문화예술 무대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다.

미·이란 전쟁, 가자지구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포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제 예술 축제에 이스라엘·러시아 등의 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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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입력 2026.05.24 20:05

수정 2026.06.0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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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는 분리 가능한가

가자·우크라 전쟁이 소환한 질문

칸·베니스에서 첨예한 논란

‘이스라엘 보이콧’ 국내서도 확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열린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열린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예술은 어디까지 정치적이어야 하는가. 예술과 정치는 분리 가능한가.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해묵은 논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재 국제 문화예술 무대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다.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도 이 질문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는 개막식이 열린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정치와 예술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와 예술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21세기에도 국경을 넘은 살상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전쟁의 시대’가 이 질문을 다시 소환했다. 미·이란 전쟁, 가자지구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포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제 예술 축제에 이스라엘·러시아 등의 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는 정치의 반대말” “영화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박 감독은 이를 의식한 듯 특정 국가를 거론하지 않은 채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더 직접적인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201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트럼프, 네타냐후, 푸틴 같은 괴물들에 맞서는 방패가 돼야 할 의무가 있다”며 ‘가해자’들의 이름을 지목했다. 그는 “침묵이 두려움을 표현이라는 사실은 매우 나쁜 징후”라며 “민주주의가 침식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반전 여론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러시아관 앞에서 연막탄이 터지고, 이스라엘관 앞에선 “집단학살관은 물러나라”는 현수막이 펼쳐졌다.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한국관을 포함한 10여개 국가관은 이스라엘의 비엔날레 참여에 항의하며 일시적 파업을 벌였다. 심사위원 전원이 이스라엘과 러시아를 겨냥, “전쟁범죄로 기소된 지도자가 있는 국가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사퇴하면서 시상식이 미뤄지고 황금사자상은 관람객 투표로 대체되는 내홍을 겪었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내에서 이스라엘의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를 규탄하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내에서 이스라엘의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를 규탄하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 최대 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도 불똥이 튀었다. 스페인·아일랜드·네덜란드·아이슬란드·슬로베니아 등 5개국이 이스라엘 참여에 반대하며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논란 속에서 지난 16일 이스라엘 가수 노암 베탄이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참가자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유튜브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바, 셀린 디옹 등 세계적 스타를 배출한 70년 역사의 유로비전은 사상 최소 규모, 일부 국가의 중계 거부로 인한 시청률 감소로 빛이 바랬다.

‘예술가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무슨 죄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들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BDS로 불리는 이 운동은 보이콧(Boycott)·투자 철회(Divestment)·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인종차별, 학살에 항의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 운동이다.

이스라엘 BDS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던 국제적 운동을 모델로 삼고 있다. 1960~80년대 벌어졌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은 남아공 상품 불매, 스포츠·문화 행사 배제, 대학 교류 중단 등 국제적 연대로 이어지며 남아공의 백인 우월주의·인종차별 정책 철폐를 이끌어냈다. “비정상 사회에 정상 스포츠는 없다”는 구호가 상징적이다. 이스라엘 BDS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저지르고 있다는 국제적 비판이 고조되며 지난해부터 정점을 찍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접촉점이 넓어지면서 BDS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피카소 등 유명 입체주의 화가 작품 91점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문을 연 ‘퐁피두센터 한화’는 개관을 앞두고 ‘아트워싱’이라는 달갑지 않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문화·기후·평화 단체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솔루션 등이 이스라엘 방산기업과 협력하고 있다며 “예술은 폭력을 세탁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예술은 정치와 분리될 수 있나. 정치가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다루는 예술도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이는 예술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 삶과 사회·정치, 세계가 복잡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한국 활동가들이 구호물품을 실은 배에 탑승해 가자지구로 향하다 이스라엘군에 체포돼 폭행 당하고, 한국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에 쓴 F-35 스텔스 전투기에 부품을 공급한 19개 국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현실의 중력이 삶을, 예술을 정치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영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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