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공동대표가 지난 22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비밀정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화창한 봄날, 꽃밭을 거닐다 만난 벌은 귀엽지만 한편으론 두렵다. 벌이 가까이 오면 대부분의 사람은 손사래를 치고, 혹시 쏘일까 몸을 피한다. 하지만 이런 벌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생벌을 조사하는 시민과학자 모임 ‘유니벌스’다.
시민과학자들은 한밤중 수풀을 헤매고, 맨손으로 벌을 잡아 관찰하기도 한다. 때로는 전문 연구자도 놀랄 성과를 내기도 한다. 유니벌스는 최근 서울 남산 야간조사에서 국내 미기록종 나방을 발견했다. 학계에 보고된 뒤 이 나방은 ‘색동비단명나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색동비단명나방을 처음 발견한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공동대표를 지난 22일 서울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났다.
이날 조 대표는 포충망을 휘둘러 말벌의 친척인 쌍살벌을 잡아 작은 비닐백에 넣고, 빠르게 날갯짓하는 일본애수염줄벌을 맨손으로 붙잡고 관찰했다. 벌이 움직일 때마다 움츠러드는 기자에게 조 대표는 “수벌은 쏘지 않는다” “벌도 도망가기 바쁘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 대표도 십여 년 전엔 곤충을 싫어했다. 특히 벌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구눈 “‘벌은 쏜다’ ‘벌에 가까이 가면 죽는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며 “병원에서 벌독 알레르기가 있다는 얘기도 들어서 벌 소리만 들려도 도망 다녔다”고 했다.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대표가 쥐어준 일본애수염줄벌을 기자가 양손으로 붙잡고 있다. 조수정 대표 제공
변화의 계기는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 자연탐사 프로그램이었다. ‘꿀벌과 밀원식물을 기록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며 벌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꿀벌의 매력에 빠졌다. 조 대표는 “무서운 마음을 안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갔는데 꿀벌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며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두려움은 호기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곤충은 갑자기 내게 뛰어드는 존재, 쏘는 존재, 병균을 옮기는 지저분한 존재라고 여겼는데, 그게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한강변과 남산 등 집 주변을 다니며 도시의 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자료를 찾아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곤충이 좋아졌다. 꽃벌 연구가 이흥식 박사 등 곤충생태 전문가·연구자·관찰자들과 교류하며 시민과학 커뮤니티 ‘벌볼일있는사람들’도 만들었다. 벌볼일있는사람들과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은 시민들과 함께 야생벌 조사 프로젝트 ‘유니벌스’를 운영하고 있다.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방문해 곤충을 기록하다 보니 ‘새로운 손님’을 알아채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2023년 9월, 유니벌스 회원들과 남산에서 야간 생태조사를 벌이던 중 예쁜 나방을 마주쳤다. 조 대표는 “도감이나 웹에서 봤던 기억이 없어서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방전문가 김성수 박사께 사진을 보내 문의했더니 미기록종이라고 알려주셨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가 지난해 여름 같은 장소에서 채집하며 세상에 알려진 이 나방은 ‘색동비단명나방’이라는 국명을 얻었다.
색동비단명나방. 조수정 대표 ·김성수 박사 제공
색동비단명나방은 중국 남부와 대만,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종이다. 서울에서 이 나방이 발견된 것 자체가 기후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 기온과 습도 변화에 민감한 곤충을 관찰해온 조 대표 역시 변화의 흐름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최근 아열대에서 살아가는 벌이나 곤충의 미기록종이 한국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소식으로 접하고 있다”며 “여름부터 겨울까지 자야 하는 좀뒤영벌이 늦가을에 깨어나 활동하는 것을 관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곤충 생태계 전반도 흔들리고 있다. 러브버그와 대벌레, 동양하루살이 같은 곤충이 도시에서 대발생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조 대표는 먹이사슬이 무너지며 특정 곤충만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포식자인 말벌이 대벌레 같은 다른 곤충을 먹으며 개체 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 눈에 띄면 바로 제거 대상으로 여겨진다”며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곤충을 없애기 때문에 천적이 없어진 곤충의 대발생이 더 많아지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곤충을 ‘극혐’했던 입장에서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잘 몰라서 무섭고 싫은 것이라 저처럼 좀 더 자세히 보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상황이 영원하지 않고,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여기면 조금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시민과학자로서 연구자들과 협업하며 곤충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조사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있다.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는 일이 언젠가 곤충을 위한 변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살던 용산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서울을 떠나게 됐다”며 “건물 사이와 화단에 수도 없이 다양한 벌이 살던 동네들이 전부 사라졌지만, 그 작은 생명들이 죽거나 이주해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쁜 곤충이나 새로운 곤충처럼 행복한 모습만 전하고 싶지만, 살충제에 쓰러진 벌이나 죽은 벌 같은 ‘슬픈 모습’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며 “작은 생물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우리가 알아야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공동대표가 지난 22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비밀정원에서 벌을 관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