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선거 공보물이 도착했다. 도지사, 교육감, 시장, 도의원, 시의원, 그리고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의 공보물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개발 공약이 가득 찼다. 공약대로만 개발되면 모두가 돈도 벌고, 집 걱정 없이, 행복하고 잘 사는 지역이 될 것 같은 ‘환상’마저 들 정도였다. 작은 정당들의 공보물은 재정 상황이 열악해서인지 빈약했다. 거대 정당들이 수십장짜리 컬러 홍보물을 돌리는데 이들은 겨우 한 장짜리에 후보들 얼굴을 보여주는 정도다. 공약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선거 공보물을 찬찬히 들여다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선거철이면 넘쳐나는 ‘장밋빛 공약’ 사이에 ‘생명안전’ 분야의 공약이 하나쯤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큰 기대는 없었으나 역시나였다. 개발 공약들이 실제 이행되어 지역이 잘 살게 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요즘 같은 기후위기와 결합한 자연재해가 덮치고, 급속하게 개발을 서두르다 뒷전으로 미뤄졌던 안전 문제가 터진다면, 개발의 성과는 한순간에 재앙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생명안전 같은 공약은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니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럽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나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활동과 함께 생명존중·안전 사회 구축을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일부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 질의서를 발송했다. 질의 내용에는 ‘생명안전 예산·조직·인력의 실질화, 지방 생명안전계획 수립, 지방 생명안전위원회 설치·운영, 재난참사 피해자 지원체계 구축 및 지자체 책임 강화, 생명안전 교육 및 기억의 제도화’ 등이 담겼다. 서울시장 후보들에게는 여기에 더해 ‘세월호 기억공간 존치에 대한 입장’도 별도로 물었다.
이 같은 질의는 지난 5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곧 공포될 생명안전기본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법 제2조)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12년의 시간을 거쳐 제정된 이 법은 “안전에 관한 모든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사고로부터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법 제1조)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국가 등은 모든 국민의 안전권을 보장할 책무를 지며, 안전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하고, 이를 위한 재원의 확충과 집행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법 제6조 제1항)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에서는 각 정당과 후보들의 공약을 제대로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다. 어렵게 찾아본 공약들 속에서도 생명안전 분야 정책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생명안전은 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데다, 정치권 스스로도 여전히 안전보다 비용과 이윤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로 서울시장에 출마한 한 후보는 고속철도 공사 구간에서 대규모 철근 누락 시공이 드러난 일을 두고 “아직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공사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오류”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만약 다수의 후보 역시 이런 안이한 인식 속에 머물러 있기에 생명안전 공약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식으로는 생명안전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4·16연대 질의에 성실한 응답 기대
서울시장 후보들을 비롯해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개발 공약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지역의 유권자들은 언제 자연재해로 집이 무너질지, 일터에서 산업재해를 당할지, 학교와 교통시설은 안전한지 등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제 중앙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선도적으로 생명안전 종합계획을 세우고, 지역생명안전위원회 설치에 나서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4·16연대의 질의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6·3 지방선거 후보들을 보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