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 ‘재판소원’ 제도가 지난 3월부터 시행됐다. 헌재가 정식 심리하는 ‘1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정당했는지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실질적인 심리를 생략한 채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재판소원 청구인은 대법원이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헌법상 재판청구권은 재판받을 권리를 일컫는다. 침해당한 기본권을 구제받으려는 시민에게 재판이라는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다. 헌법상 다른 기본권을 뒷받침하는 기본권으로 평가된다. 사회적 약자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제기하는 ‘공익소송’에서 재판청구권의 가치는 특히 크다. 인권 보호와 불합리한 제도 개선 등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법정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소송에서 이기면 제도 개선의 발판이 마련되는 등 그 이익은 공동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간다. 소송 제기만으로도 부조리를 공론화하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효과를 준다. 국가 폭력, 장애인 차별, 정보공개, 노동관계, 소비자 및 환경 보호, 의료 등과 관련한 소송이 그렇다.
이런 공익소송은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있다. 민사소송법 제98·109조에 명시된 소송비용의 ‘패소자 부담’ 원칙이다. 소송에서 패소한 사람은 승소한 상대방의 변호사비 등 소송비용을 물어줘야 한다.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이들이 공익소송에 나서는 것을 위축시킬 수 있다. 소송비용이 부담돼 소송 내기를 주저하거나 중도에 포기한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들이 2015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책임을 물으려 소송을 청구했으나, 1심 이후 일부는 소송비용 때문에 항소하지 못했다. 권력 감시와 알권리 충족이 목적인 정보공개 청구 관련 소송도 기본 소송액이 5000만원이어서, 패소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
시민사회단체 등은 민사소송법을 개정해 일률적인 패소자 부담 원칙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왔다. 공익소송에서는 원고가 패소해도 소송비용을 낮추거나 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국가소송법을 개정해 국가 등을 상대로 한 공익소송에선 비용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입법 시도도 있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민사소송법 및 국가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주목을 받았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선 복기왕(민주당)·전종덕(진보당)·최혁진(무소속)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내놓았다.
반대 의견도 있다. 공익소송의 정의가 불명확하고 특정 사건만 예외를 인정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다. 소송 남발도 우려된다고 한다. 그러나 공익소송 개념은 사회적 논의와 판례 등을 거쳐 정립하면 된다. 악의적·반복적 소송을 걸러낼 장치도 마련하면 될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공익소송이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근본 대책일 수 있다. 정부와 국회 등이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기본권 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절차 앞에서 돈부터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정의롭지 않다.
정희완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