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대표’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허락된 특권인가. 거대 양당이다. 양당을 지지하는 제1·제2 시민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들이 진영을 나눠 사활적 투쟁을 벌이는 동안,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제3의 시민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지방민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상력은 서울에서 시작해 서울로 끝난다. 돈도 일자리도 문화도 청년도 수도권에 몰린다. ‘지방자치’라는 말이 있다. 지방이 자율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실현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방은 그럴 힘이 없다. 지방민은 투표권을 가졌으나 자신들의 대표를 만들지 못한다.
‘지방선거’는 이상한 말이다. 실제로는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공천은 중앙 권력이 주도한다. 중앙에서 파견된 이들이 지방을 지배한다. 그 때문에 중앙이 ‘시스템 공천’이라 부르는 것을 지방에서는 ‘기획 공천’이나 ‘깜깜이 개표’라며 조롱한다. 주권은 지방에 없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곧 당대표 싸움이다. 공천의 수혜자들은 중앙의 권력 경쟁에 동원되어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 기획 공천의 생명 원리는 철저한 상부상조다.
돈으로 당원을 모으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권리당원을 실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매집한 권리당원은 일종의 ‘정치 화폐’다. 그들은 말한다. “권리당원이 필요한가. 만들어 주겠다. 대신 승자가 된 당신이 우리에게 보상할 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방자치란 곧 표와 자리, 이권을 나누는 카르텔의 다른 이름이다.
모두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국가 예산을 더 많이 차지하려 달려드는 것을, 지금 우리는 지방자치라 부르고 있다. 역설이다. 지방에는 두 집단이 있다. 한 집단은 이권 동맹에 열성적이다. 그들은 분주하다. ‘자치분권 민주주의’는 그들 사이의 암호다. 그 반대편에는 권력 없는 지방 시민, 지방 유권자가 있다. 그들은 자치나 분권이 ‘허구’임을 알지만 제어할 수단이 없어 중앙이 지방을 얼마나 편의적으로 대하는지를 지켜보며 냉소 중이다.
제3시민은 누구인가. 중하층 서민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접받는 이들은 중상위 소득자 30%다. 그들은 요구한다. 우리들의 말은 신문에 실리고, 정책에 반영되며, 광장에서 확성기를 얻어야 한다고. 그들이 권리를 독점하면서 앞세우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 시민 거버넌스, 시민정치다. 그 고상한 말들로 그들은 공적 자산과 자리를 은밀한 단물로 만들어 공유해왔다.
그들 아래 70%의 서민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대표되지 않는다. 그들은 늘 다음달 월세를 계산하고, 자녀의 학원비를 고민하고, 정규직의 문 앞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이다. 지배계급이 된 정치인들은 어려운 서민 형편을 돌보겠다고 말한다. 모욕적이다. 서민을 호명할 때의 그런 문법과는 달리, 중산층을 말할 때면 정치 계급들은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냐며 동류의식을 드러낸다.
제3시민에게 두려움은 만성이 되었다. 일자리를 잃을 두려움, 병이 들어도 쉬지 못할 두려움, 늙어서 가난해질 두려움. 이 두려움은 체제가 만든 것이지만, 체제는 다르게 답한다. 돈도 집도 없고 일자리가 없으면 주식 투자하면 된다고. 가상통화도 괜찮다고. 그들은 밥이 없으면 빵 먹으라는 사람들이다.
제3시민은 양당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가진 모든 이들이다. 민주-반민주가 그들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진영의 언어가 그들의 분노를 담지 못한다. 이런 판이라면 뒤집혀야 옳지만, 국회는 다르게 답한다. 개헌하고 선거제도 고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면 된다고. 기만이다. 지금 국회는 대의기관이 아니다. 의원은 우리의 대표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로 돈을 벌고 정치로 권세와 영향력을 누리며 산다.
그들은 우리를 이용해 생존하는 기생 집단이다. 개혁을 말하고 개혁하는 척을 한다. 개혁을 외치는 반개혁 세력이다. 그간 우리가 목격한 것은 정확히 그것이다. 절망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혁명에 나서자는 것도 아니다. 국회를 불태우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체제가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들, 예컨대 양당제와 중앙 집권, 중산층 중심 사회가 공익적이라는 환상부터 근본에서 따져 묻는 것이다. 그래야 이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제3시민이란 무엇인가. 정직한 분노다. 제3시민은 그간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3시민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변화다. 지금과 같은 저질 정당, 저질 당대표는 견디기 어렵다. 지금과는 다른 정치, 다른 민주주의를 원한다.
박상훈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