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에서 70대 남성을 진료의뢰했다. 병실에서 산소줄을 끼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폐가 망가졌고, 아무리 숨을 쉬어도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차트를 보니 건강검진에서 폐에 작은 결절이 발견돼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한 상태였다. 양성일 가능성이 높은 조직인데, 심한 불안이 생겨 숨을 몰아쉬고, 그로 인해 답답함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항불안제를 처방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안정을 되찾은 뒤 그와 면담을 해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숱한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했고, 5년 전 회사를 매각한 뒤 은퇴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만큼, 자신의 방식이 맞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왔고, 가족에게도 그런 태도로 대했다. 부인은 평생 그에게 맞춰 살았고, 자식들과의 갈등도 돈과 권위를 가진 그의 뜻대로 풀렸다. 그런 그가 왜 조직검사 앞에서 무너진 것일까?
바위 같은 불안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을 돌과 바위로 비유하곤 한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불안한 마음이나 잠시 찾아온 금전적 어려움은 돌 같은 불안이다. 컵에 조약돌 한두 개 들어간다고 물이 넘치지 않는다.
반면 바위 같은 불안은 인생의 과제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살아가는 연령의 궤적에 따라 커다란 과제를 마주하고 그것을 풀어가야 한다. 10대에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청년기에는 사회 속에서 제 몫을 해내며 자리를 잡아야 하며, 중년기에는 자신이 꿈꿔온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노년기에 이르면 독립성을 잃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과 머지않은 미래에 죽음이 다가온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바위는 어떤 계기를 통해 불쑥 수면 위로 올라온다. 큰 덩어리에 압도당하는 듯하며,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일반적으로 양성 가능성이 높은 결절의 조직검사는 돌멩이 수준의 불안에 그친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게 바위와 같은 불안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큰 덩어리가 수면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목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 두려움은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자각한 것과 연관된다. 여기에 평생 독립적으로 살아오면서 누려왔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족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으로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도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의지가 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여길수록 이처럼 바위 같은 불안이 갑작스럽게 올라오면 큰 혼란을 경험하고, 약을 먹어도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 애써 외면하거나 대면할 일이 없던 인생의 과제가 어느 순간 무게감을 지닌 채 마음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표면이 아닌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것이 자신을 흔드는 듯한 느낌, 이러다 컵이 깨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까지 더해진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고 떨쳐내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두려움까지 겹쳐져 견디기 어려워진다.
바위 같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억누를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서서히 그 주제에 눈을 돌려 바라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먼저 내 마음속 불안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바위가 언젠가는 얼음처럼 서서히 녹아내리기를 바란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고, 그것이 내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결국은 만날 일들이라는 걸 수용한다. 이런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색다른 묵직한 불안을 만날 때, ‘아 드디어 왔구나’라는 인식을 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현생의 학교를 졸업하면 과제도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인생학교는 숨을 멈추는 날까지 과제를 내주는 지독한 곳인 것 같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