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주가지수가 급등하고 있고,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대기업 실적 전망에는 장밋빛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이런 성과의 과실을 모든 국민이 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성장은 성과급이고, 주식 평가이익이며, 아파트 양도차익이다. 반면 누군가에게 성장은 여전히 높은 생활비, 오르지 않는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대출이자의 부담으로 남는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의는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를 만든 노동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대기업 노동자의 성과급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같은 노동시장 안에서도 산업, 기업, 고용 형태에 따라 보상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다는 데 있다.
대기업 정규직에게는 성과급과 자사주가 자산 형성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에게 경기 회복은 임금 인상으로도, 자산 축적으로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이 국민 경제 전체의 호황이 되려면 기업 내부의 보상을 넘어 협력업체, 지역경제, 중소기업 생산성으로 성과가 확산되어야 한다.
주가지수 급등도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의 상승은 한국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체감도는 다르다.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평가이익을 즉각 누린다. 반면 금융자산이 없는 가구는 뉴스에서 주가지수 상승을 볼 뿐이다. 주식시장이 좋아질수록 자산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격이 더 벌어지는 역설이 생긴다.
여기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부동산 격차가 겹친다. 한국에서 자산 격차의 핵심은 여전히 주거 자산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가격 상승기에 자산을 방어하거나 늘릴 수 있지만, 무주택자는 전세와 월세, 대출 규제, 주거비 부담 속에서 출발선이 계속 뒤로 밀린다. 부모의 부동산은 자녀의 주거 안정과 교육 기회로 이어지고, 다시 일자리와 혼인, 출산의 격차로 전환된다. 자산 격차는 단순히 현재의 불평등이 아니라 미래의 기회 격차를 낳는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빠르게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거시지표도 비교적 빨리 회복되었다. 그러나 회복의 성과는 고르게 나뉘지 않았다. 일부는 강해진 기업과 자산시장 회복의 혜택을 누렸지만, 다른 일부는 불안정 노동, 낮은 임금, 취약한 안전망 속에 남겨졌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무너졌고, 비정규직과 하청 구조가 확대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굳어졌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청년들은 도전보다 안정적 생존을 택한다. 복지와 재분배의 비전을 충분히 세우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반복하지 말아야 할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유로 격차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일, 성장의 과실이 언젠가는 아래로 흘러내릴 것이라고 믿는 일, 재정을 단순히 아껴야 할 비용으로만 보는 일이다. 외환위기 때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만이 아니었다. 해고와 전환, 실업과 재취업, 주거와 교육, 노후와 돌봄을 함께 떠받칠 복지국가의 비전도 제시했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주식시장과 부동산 회복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장률을 말하는 낙관론만이 아니다. 국민 다수가 회복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복지정책의 비전도 있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주거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노동자에게는 산업 전환기에 버틸 수 있는 고용안전망과 재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자영업자에게는 부채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가구에는 돌봄과 교육의 공공성이 필요하다. 노년층에게는 빈곤을 막는 소득 보장과 지역 돌봄이 필요하다.
재정도 이 방향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좋은 재정개혁은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것이다. 조세정책 역시 근로소득에는 촘촘하고 자산소득에는 느슨한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 세금이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자산 격차를 정당화하는 장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외환위기 이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장의 속도만이 아니라, 그 성장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하는 복지국가의 비전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올해가 소득과 자산 격차 확대의 원년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통로를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