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어쩌면 숫자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십진법은 단순한 숫자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심리와 시장의 흐름까지 만드는 문명의 언어다.
인류가 십진법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인간에게 손가락이 열 개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는 사냥감이나 곡물의 수를 셀 때 손가락을 이용했다. 양손을 펼치면 열이 된다. 그래서 10은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기준이 됐다. 물론 다른 진법도 존재했다. 메소포타미아는 60진법을 사용했고, 오늘날에도 1시간 60분, 원의 360도 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세계 표준은 결국 십진법이 됐다. 가장 완벽한 체계였다기보다는, 인간에게 가장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쿼티(QWERTY) 자판을 사용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QWERTY는 가장 효율적인 배열이 아니라 초기 타자기의 기계적 한계 속에서 만들어진 구조였다. 그러나 한 번 표준이 되자 학교와 기업, 사무 시스템이 그 위에 구축됐다. 이후 더 효율적인 배열이 등장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다. 이런 경로 의존성으로 인간은 십진법을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십진법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인간은 특정한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1은 시작과 승자의 숫자다. 3은 인간이 가장 안정적으로 인식하는 숫자다. 과거·현재·미래처럼 인간은 세 개의 구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5는 한 손의 숫자이고, 10은 완결의 숫자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라운드 넘버’(Round number)에 열광한다. 다우 10000, 비트코인 10만달러, 코스피 5000 같은 숫자는 단순한 지수가 아니라 시대의 상징이 된다.
최근 한국 증시는 그 심리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4월 코스피 지수가 저점(2293)인 날 삼성전자 주가는 5만3000원이었다. 이후 코스피는 3000, 5000, 7000을 차례로 돌파했고, 삼성전자도 6만500원에서 26만6000원까지 급등했다. 흥미로운 점은 상승 속도다. 2000대에서 3000 돌파까지는 75일이 걸렸지만, 6000에서 7000 돌파까지는 불과 2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 더욱 빨라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코스피와 삼성전자의 관계다. 초기에는 시장 전체가 반등하는 흐름이었지만, 3000 돌파 이후부터는 삼성전자의 상승률이 지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관심이 ‘한국 경제 전체’가 아니라 ‘결국 삼성전자’로 수렴한 것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를 더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사람들은 흔히 코스피 상승을 한국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재 코스피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산출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은 최근 45% 안팎까지 확대됐고, 상위 10개 종목 비중은 60%에 육박한다. 즉 코스피는 점점 한국 경제 전체의 평균이 아니라, 초대형 기술주의 방향성을 반영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크게 상승하고 나머지 종목들이 하락해도 지수는 오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하락 종목 수가 더 많은데도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수는 강한데 투자자의 체감은 약한 이유다. 시장 전체는 약한데 거대한 몇개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상장지수펀드(ETF)의 확산은 이 현상을 더욱 강화한다. 과거 액티브(적극운용) 펀드는 비싸진 종목을 줄이고 소외된 종목을 사들이는 균형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시가총액 가중 ETF는 다르다. 삼성전자가 오르면 시가총액이 커지고 비중이 확대되며, ETF 자금은 자동으로 삼성전자를 더 많이 매수한다. ‘좋은 기업이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들어오면 더 큰 기업을 더 많이 사는 자기강화(Self-Reinforcing)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코스피 1만 포인트’라는 숫자를 바라볼 때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인간은 십진법 속에서 살아가기에 1만이라는 숫자에 강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숫자가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극소수 초대형 기업의 팽창을 의미하는지는 사실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시장은 숫자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심리로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봐야 할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이다.
이윤학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