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25일(현지시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FP·EPA연합뉴스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의 주된 정서는 쓸쓸함이다. 그 정서를 한결 깊게 만든 것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노래 ‘안개’이다. 이 노래를 부른 정훈희는 한류 가수 원조 격이다. 1971년 그리스 국제가요제에서 입상했고, 1972년 일본 야마하가요제에서 가수상을, 1975·1978년 칠레가요제에서 최고가수상을 받았다. 그는 몇년 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공연 뒤 ‘꼬레아’라고 외쳐줘서 많이 흥분했었다”고 했다.
한국이 무척 가난하고 초라하던 시절, 국제가요제는 ‘국위선양’ 수단이었다. 그건 세계인들에게 ‘여기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외치는 눈물겨운 존재 증명 노력이었다. 1975년 칠레가요제에서 정훈희가 한복 차림으로 ‘무인도’를 열창하는 영상을 보면 당시의 고달픈 삶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해진다. 독일에 파견된 광부·간호사들이, 중동의 사막으로 줄지어 떠난 건설노동자들이 피땀을 쏟아가며 달러를 벌어들이던 때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살기 위해 세계로 나가야 했다.
상전벽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다양한 언어권 사람들이 한국어로 된 K팝을 ‘떼창’하는 건 일상이 됐다. BTS 팬들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르고, 남녀노소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며 울고 웃는다. 한국을 찾는 K팝 팬도 많다. 과거에 우리가 우리를 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면 이제 세계인들이 한국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기 위해 우리를 찾아온다. 가히 K팝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제52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시상식에서 BTS가 3관왕에 오르는 등 K팝 아티스트들이 11개의 상을 싹쓸이했다. 볼로냐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신디 L 스캐치는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라는 책에서 ‘다른 문화의 음식을 즐기는 것은 타자를 흥미롭고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통로이자 출발점’이라고 했는데, 음악을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K문화는 세계로 활짝 열린 창이고, K팝은 그중 가장 큰 창이다. 그 창을 통한 문화적 교감과 소통이 창출하는 유무형의 가치 총량은 K반도체 못지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