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신세계그룹이 지난 26일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행사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다. 행사 기획의 고의성을 밝히진 못 했지만, 기획이 실행되기 전까지 보고 라인에 있던 단 한 명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등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민감성 부재를 드러냈다”고 반성했다.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과 강제력을 동원할 수 없는 한계를 감안하면, 아쉽긴 하지만 일견 납득할 수 있는 조사 결과다.
하지만 비판 여론을 돌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정용진 회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는데도 불매운동은 확산일로다. 가장 큰 이유는 ‘고의성이 없다는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태 발생 이후 주말, 밤낮 없이 사태 수습에 골머리를 썩였다는 신세계그룹 담당 임직원들로서는 언제 끝날지 모를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은 왜 정 회장과 신세계의 말을 믿지 못할까. 불매운동은 왜 이렇게 커졌을까. 연매출 3조원·직원 2만명이 넘는 스타벅스코리아는 정말 이대로 위기를 맞을까.
시민들이 이번 사태에 분노하는 배경엔 정 회장의 논란이 된 과거 언행이 자리잡고 있다. 정 회장은 2021년 SNS에 음식 사진 등과 함께 ‘미안하고 고맙다’란 문구를 반복해 올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와 관련해 쓴 표현을 조롱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 회장은 그 무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멸공’과 같은 표현도 반복해 게시했다. 대기업 오너가, 정치적 입장을, 정제되지 않은 방식으로 마구 쏟아낸 것이다. 일부는 ‘노빠꾸 정용진’에 열광했지만, 신세계그룹엔 정 회장의 ‘극우’ 이미지가 더해졌다.
대기업 오너 또한 시민이기에 역사적·사회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중은 오너의 말과 행동을 그 기업집단 전체의 입장과 잘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너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에 앞서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책임질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표현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배우 박정민은 지난 2월 자신의 출판사 ‘무제’ 유튜브 채널에서 소설가 김홍과 대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들이 있을 때 저는 중립을 지키고 있어야(해요). 저는 여럿이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나서면) 누군가한테 피해를 주죠. 저의 생각이 있어도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저의 직업적인 윤리이기도 해요.”
재계 순위 11위인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정 회장에게 딸린 사람은 배우 한 명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포털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신세계그룹의 상시종업원 수는 6만7111명이다. 신세계그룹 협력사와 주주 등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과장을 좀 보태면, 정 회장의 말 한 마디에 이들의 생계가 좌우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의 멸공 논란 직후 신세계는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그래서 정 회장의 사과는 많이 아쉽다. 정 회장은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진정으로 직원들을 생각했다면 국민을 향한 당부보다 본인의 과거 섣부른 언행에 대한 반성을 먼저 했어야 했다. 정 회장의 과거 행동으로 인해 신세계그룹에 묻어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든 대중은 그 진정성을 믿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