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코스피는 8185.29로 마감됐다. 장중 한때 340포인트 떨어지며 7840대까지 밀렸지만 ‘8000 붕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7000이든 8000이든 이 지수는 이미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오늘 주가는 정확히 2670.15였다. 코스피지수 8000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유니콘 같은 숫자다.
흔히들 주식시장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는 “5년 안에 우리 주가지수가 3000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는 한 증권사 객장을 찾아가 “제대로 되면 (내) 임기 중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다”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두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동안 3000을 찍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도 3000 근처에 가지 못했다. 보수정부에 주가 3000은 난공불락이었다.
그랬던 코스피가 지금 7000, 8000 한다. 심지어 여의도 일각에서는 1만도 얘기한다. 주식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 맞다면, 그 꽃이 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 8000은 상상속 유니콘 숫자
꿈의 지수 달성하고도 지선서 고전
상대적 소외감, 박탈감은 더 커져
자산관련 과세로 양극화 완화해야
주가가 그만큼 뛰었으니 돈 번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찾은 본가에서 노모는 “이웃집 딸이 주식에 투자해서 3000을 벌었다”고 말했다. 주변에 주식한 사람은 다 망했다며 주식투자는 손사래를 치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귀에까지 ‘성투’ 사례가 들어갔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 주주만 40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꿈의 지수를 달성했는데도, 여론은 생각보다 밋밋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60%에 걸려 있다. 6·3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들은 야당 후보에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선거는 ‘먹사니즘’이 중요하지 않았나.
두어 가지 짚이는 게 있다. 불기둥 장세에도 불구하고 온기가 그만큼 주변에 퍼지지 않았다. 주식거래 앱을 닫고 바라본 거리에는 불 꺼진 가게가 천지다. 어느 집에나 취직을 하지 못한 20·30대들이 있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물가만 크게 올라 사는 것은 더 팍팍해졌다. 주식으로 소소하게 푼돈을 벌었다지만 달라질 건 없다. 상대적 소외감은 커졌다. 페이스북의 한 지인은 퇴직금으로 억대 자금을 넣어 두 달도 안 돼 두 배가량 돈을 벌었다는 글을 올렸다. 스레드에는 수익률 1000%를 인증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온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사회 전체적으로 부가 늘어난 데 비례해 행복이 늘어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게 여론으로,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골고루 이뤄지기 힘들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구조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고성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선례가 있다. 지난 1분기 대만은 13.7% 기록적인 성장을 했다. 그 결과 올해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 일본을 앞선다. 그래서 대만은 행복할까. 대만 빈과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GDP는 일본, 한국을 추월했는데도 왜 체감적으로는 가난할까?”(5월12일자)
제아무리 국가경제가 성장해도 내 주머니가 넉넉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벌어진 소득격차는 오히려 불만과 불평을 낳는다. 고성장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금리 인상의 요인이 된다. 저소득층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는 얘기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이 가장 많은 상위 20%와 가장 적은 하위 20%의 차이(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는 6.59배까지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주가 8000은 잔치를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꾸지 말아야 할 악몽이 될 수 있다.
3% 언저리의 성장률이 예고되는 지금, 유보해둔 금융투자소득세, 보유세 등 자산 관련 과세를 이제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고소득자에게서 세금을 걷어 저소득자를 지원하는 것은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 수단이다. 그 일을 하라고 정부가 존재한다.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주가 1만을 가도 별거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바로잡는 데도 골든타임이 있다.
박병률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