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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반가사유상과 진돗개를 한 화면에 담은 그림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지를 묻는 선종의 화두를 떠올리게 하고, 나무 연작에선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 폭의 풍경으로 펼쳐 보입니다.

"현장에서 그림으로 싸웠던 사람"이었다는 작가는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면에 있는 부처를 발견하면 전쟁이나 싸움도 없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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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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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그리던 민중미술 작가는 왜 반가사유상을 그리게 됐을까

입력 2026.05.30 08:30

  • 배문규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종구, ‘불이(不二)_무무명’,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불이(不二)_무무명’,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검은 화면 속 촛불 하나가 작게 타고 있습니다. 그 맞은편, 반가사유상은 한 손을 뺨에 댄 채 고요히 앉아 있습니다. 또 다른 불꽃은 화면을 삼킬 듯 타오르고, 잔불처럼 어둠 속을 떠돌기도 합니다. 화면은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두 개의 캔버스를 맞붙인 화면에서 반가사유상은 앞모습과 뒷모습으로, 혹은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어 등장합니다. 그 분할은 단절이라기보다 서로를 비추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삶과 죽음, 고통과 평화, 번뇌와 깨달음처럼 대립해 보이는 것들이 하나의 화면을 이룹니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에서 이종구 작가의 개인전 ‘사유’(思惟)가 열리고 있습니다. 민중미술 작가로 잘 알려진 이종구(72)는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 가려진 농촌 공동체의 삶을 탐구했습니다. 정부미 쌀 포대 위에 그려 넣은 농민의 초상, 코뚜레를 한 황소의 모습은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입니다.

그런 작가가 8년 만에 개인전을 열면서 전시장을 반가사유상으로 채웠습니다. 그사이 작가는 두 차례 큰 수술을 겪으며 죽음을 마주했고,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며 삶의 전환점에 섰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단절의 시간 동안 외부 현실을 향하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기 존재와 내면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마주한 반가사유상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사회적 의제를 넘어 생명과 평화의 영성”으로 향하는 38점의 회화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두 개의 캔버스를 하나로 붙인 작업이 많습니다. 한쪽에는 불상을 그리고 다른 쪽에는 자화상, 달빛이 흐르는 강, 불꽃 등을 그려 넣었습니다. 여러 화면의 불은 번뇌를 태우고 지혜를 밝히는 빛이면서, 작가의 이전 작업을 생각하면 저항을 상징하는 화염병의 불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세속과 깨달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이종구, ‘사유_불’,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62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사유_불’,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62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불이(不二)_불’,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불이(不二)_불’,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작가는 지난 20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삶과 죽음, 고통과 평화, 인간과 자연이 서로 다른 게 아니고 의존하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관계”라며 “캔버스 두 개를 하나로 붙인 것도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구현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유_생로병사2’가 흥미롭습니다. 한쪽에는 큰 수술을 받은 작가가 환자복을 입고 오른손에는 수액 거치대를 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정장을 입은 작가가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환자일 때 살기 위해 링거를 잡고 있다 퇴원하니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잡고 있게 되더라”며 “이게 삶이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종구, ‘사유_생로병사2’,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사유_생로병사2’,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그렇다고 사회적 모순을 바라보던 시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사유_예토(팔레스타인)’는 반가사유상 옆에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환기하는 군상을 배치했습니다. 그림 속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얼굴도 보입니다. ‘예토’는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한 현세를 뜻합니다. 농민과 농촌의 현실을 기록해온 시선은 국경을 넘어선 연대로 확장되는 셈입니다.

진돗개와 나무가 등장하는 작품들에서는 시선이 생명 전체로 넓어집니다. 반가사유상과 진돗개를 한 화면에 담은 그림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지를 묻는 선종의 화두를 떠올리게 하고, 나무 연작에선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 폭의 풍경으로 펼쳐 보입니다.

“현장에서 그림으로 싸웠던 사람”이었다는 작가는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면에 있는 부처를 발견하면 전쟁이나 싸움도 없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생각에 머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6월20일까지.

이종구, ‘사유_예토(팔레스타인)’,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사유_예토(팔레스타인)’,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x130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사유_無’,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65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사유_無’,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91x65cm. 학고재 제공

이종구 개인전 ‘사유’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이종구 개인전 ‘사유’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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