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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선거, 언론, 주권위임의 모순

입력 2026.05.31 20:07

“영국 국민은 선거 때만 자유롭고 선거 이후에는 노예가 된다.” 장 자크 루소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질적 문제로 주권위임의 모순을 지적한다. 대의제 정치에서 선거 이후에는 유권자의 통제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때만이라도 유권자가 자유롭다고 할 수는 있는 것인가?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대하는 선거의 기능은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의 정치적 대리인을 정책과 그 실현 능력으로 비교하여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교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정책대결과 능력검증 중심으로 진행된 사례는 희귀할 정도이다.

선거 국면에 들어서는 순간 선거는 하나의 거대한 마케팅 이벤트같이 전개된다. 선거는 권력투쟁, 정체성, 미래전망, 집단심리 등 극적요소가 한꺼번에 압축된 경쟁서사처럼 표출된다. 정당은 지지를 얻기 위해 브랜드화되고, 후보는 이미지 상품처럼 소비된다. 시민은 방송프로그램의 시청자처럼 반응한다. 공공선보다 감정적 소구가 정치의 중심이 된다.

선거는 짧은 시간에 승부가 난다. 하지만 현대 정책들은 대체로 복잡해서 논의와 조정, 입안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즉각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간결한 메시지와 슬로건에 집중한다. 물론 정책들이 제안된다. 그러나 유권자가 새로운 정책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간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장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어떤 정책은 내용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구호부터 등장한다. 여론은 단순화되고 정책은 평균화된다. 이항대립구도로 복잡한 현실은 정치에서 누락된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판단하는 유권자는 사실상 수동화된 시민이라는 위험에 직면한다. 선거는 국민의사의 완전한 표현이라기보다 불완전한 정치적 신호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에 매개된 정치커뮤니케이션이라는 구조 속에서 증폭된다. 정치보도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쟁서사는 언제나 중심이다. 정책기사는 조회 수가 적고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린다. 갈등기사는 클릭 수가 많고 생산하기 쉽다. 미디어들의 정치 정체성 상품화는 날이 갈수록 가속화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경마저널리즘 현상은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국민을 대리한다는 것도 모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체적 정책을 합리적으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다면, 당파저널리즘은 개별 언론이 생각하는 국민을 위한 정의를 주창한다 하지만, 사실은 상업적 이익이나 정치권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역시 언론자유라는 기본권 대리의 모순이 내재된 현상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참여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적 제도보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제도보완은 선거를 정책중심으로 치르자는 수준으로 될 일이 아니다. 시민들과의 공개적이며, 전문적인 동시에 설명력 있는, 그리고 책임 있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함께하는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일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 앙겔라 메르켈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관한 국민들과의 장기간 이루어진 직접 대화형 소통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전면공개와 지속적인 타운홀 미팅 형식의 국민들과의 대화도 의미 있는 사례이다. 정당들도 자신의 정책에 대해 얼마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책논의의 일상화에 미디어는 필수적이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대해 스스로 취재하고 보도한다는 시민저널리즘(Civic Journalism) 현상이 나타난 핵심적인 이유는 말하고 들을 자유를 전문직 언론에 위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알권리 개념을 처음 주장한 것은 언론이다. 언론이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면, 국민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의 내용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숙의해야 할 것이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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