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에 2.9㎝ 단차가 벌어졌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12시간 만에 무너지리라고는. 잠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장점검을 하기 위해 고가차도 아래로 들어갈 때만 해도. 설마 했을 것이다. 철도 운행과 보행을 통제하지 않아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도.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는 그렇게 무너졌고 현장 관리자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시민들은 또 한번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저곳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회사 후배도 그날 우연히 인근을 지나다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온라인에는 ‘매일 지나는 길이다’ ‘자주 가는 식당이 근처에 있다’와 같은 반응도 많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고가도로가 무너지기 직전 오토바이 1대가 가까스로 화를 피했으며, 건너편 횡단보도에는 시민들도 서 있었다. 붕괴 직전 승객을 태운 열차도 지나갔다니,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번 사고를 ‘남의 일’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안전불감증 사회에서 사는 우리
서소문 고가차로 붕괴로 드러나
반복되는 참사 신호 외면한 대가
안전감수성 위험 사회선 꼭 필요
서소문 고가차도 소식을 접하면서 ‘또?’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서소문 고가차도가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고 원인과 관리 소홀 등 양상은 기시감이 들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2023년 다리 전체에서 균열이 확인됐는데도 보강조치를 미루다 붕괴했던 분당 정자교 사고가 떠올랐다.
원인 규명이 진행 중이지만,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사고는 충분한 통제와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
통상 그래왔다. 홍수 경보 등 여러 차례 위험 신호에도 지하차도 차량 운행을 통제하지 않았던 2023년 충북 오송 참사가 그랬으며, 압사 위험 신고가 다수 접수됐지만 현장 출동은커녕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2022년 이태원 참사 역시 그랬다. 이들 사고 원인은 ‘안전불감증’으로, 경고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경고불감증’ 때문이었다. 위험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후진국형 참사들이다.
사고 이후 상황도 비슷하다. 현장 근로자나 실무자 과실을 찾아 네 탓 공방을 하다 책임자 처벌을 놓고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재개된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작업이 근로자 진입 없이 굴착기를 통한 방식으로 진행됐듯 사고 전에는 작동하지 않던 안전대책들이 사후에 쏟아진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고, 또 다른 안전불감증으로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가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전철을 밟는다. 참사는 이렇게 반복된다.
일상에서 위험 상황에 놓이는 경우는 많아지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했다. 과거의 재난이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항력적이었다면,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었거나 이를 관리하는 데 실패한 데서 비롯한 위험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교량과 지하철, 터널 등 주요 도시 인프라는 1970년 즈음 완성돼 이미 상당수가 노후 단계에 진입했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극한 호우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위험 불확실성을 키운다.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노후 시설을 방치하다 무너진 사고가 아니다. 안전 확인을 위한 현장점검 도중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서울시는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과 함께 안전 관리 체계 전반을 들여다봐야 한다. 시민들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삼성역 철근 누락 사실에도 불안해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공 오류’라며 “안전 문제는 없다”고만 일축할 때가 아니다.
‘안전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다. 위험 요소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쯤으로 정의할 수 있다. 위험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빠른 경고와 민감한 대처다. 안전을 언제까지 운에 맡길 것인가. ‘설마’가 아닌 ‘혹시라도’로 살펴볼 때다.
이성희 전국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