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 ‘이례적 풍작’···수요·공급 불균형 발생
관세 문제와 미·이란 전쟁 ‘냉동감튀 공급망’ 악영향
벨기에 감자농가조합, 두달째 0유로 공시가격 유지
현지 농가, 폐기하거나 무료 나눔 등 해법 고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4년 10월2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감자튀김을 만들고 있다. Gettyimages/이매진스
‘감튀(감자튀김) 원조’를 자처하는 세계 최대 감자 가공식품 수출국 벨기에가 넘쳐나는 감자 생산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례적인 풍작으로 유럽 전역의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 반면, 미국발 관세전쟁과 미·이란 전쟁으로 인한 비용 급증, 수요 둔화 등 악재가 연달아 겹치며 처분이 어려울 정도로 재고가 쌓인 탓이다. 벨기에 감자 농가들은 잉여 생산량을 무료로 나누거나 손실을 무릅쓰고 폐기하는 등 해법을 고심 중이다.
벨기에 동부에서 감자 농장을 운영 중인 크리스 드헤이레는 최근 1000t 물량의 감자를 다시 자신의 밭에 버렸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격을 낮춰도 감자를 사가는 이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팔리지 않은 감자에 싹이 나 폐기 외엔 방법이 없었다. 비료와 인건비 등으로 16만유로(약 2억 8119만원)의 손실을 본 드헤이레는 감자 재배면적을 지난해의 10분의 1로 줄였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역대급 감자 풍년의 그늘이다. 감자튀김 산업 호황에 발맞춰 재배 면적을 꾸준히 늘려왔고, 양호한 기상 상황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지만 수요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심각한 수요-공급 불균형이 발생했다. 벨기에 감자농가조합 벨가폼은 현물시장의 가공산업용 감자 거래가 멈춘 지난달 초 이후 0유로로 공시한 거래 가격을 두 달째 유지 중이다. 지난해 역대급 수확량이 예상되며 적신호가 켜진 가공산업용 감자 1t 가격은 지난 2월 15유로, 지난 3월 10유로로 급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정치 변수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벨기에 감자 산업에 직격탄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미국발 관세전쟁과 미·이란 전쟁의 여파가 냉동 감자튀김 공급망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세 부과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유럽산 감자튀김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출량이 줄었다. 글로벌 감자 시장 전문 매체인 월드포테이토마켓은 지난 2월 유럽연합(EU)의 대미 감자 수출이 1년 전보다 8%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미·이란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 비용 상승도 농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베르뮐렌 벨가폼 최고경영자(CEO)는 “이란 전쟁이 냉동 감자튀김 공급망에 부담을 주는 가장 최근의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보관·운송 비용 증가가 수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감자튀김 소비국으로의 수출은 어려워졌다. 물가 상승으로 유럽인들의 외식이 줄어든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감자튀김 소비의 상당 부분이 식당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인도 등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감자튀김 시장에 뛰어드는 경쟁국도 벨기에 감자 농가를 위협하는 요소다.
감자튀김 산업은 더 장기적인 구조 변화에도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는 성인 8명 중 1명이 위고비 같은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이 약물은 칼로리 섭취뿐 아니라 감자튀김 같은 가공식품에 대한 욕구 자체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공급 과잉이 모든 벨기에산 감자 가격과 연관된 것은 아니다. 이번 감자 대란은 냉동 가공식품용 감자에 국한된 것으로,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구매하는 감자와는 무관하다.
벨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도 수급 불균형으로 감자 대란을 겪었다. 식당, 술집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문을 닫으며 감자 소비가 줄었고, 수출도 급감해 75만t 이상의 재고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