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스상에 번역 부문이 신설됐다. 올해 최종 후보를 보니 10권 중 4권이 한국 작품이었다. 로커스상은 미국에서 SF와 판타지 등 사변소설에 수여하는 상으로, 이 분야에서는 휴고상 및 네뷸러상과 함께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곤 한다. 독자 투표 방식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기에 다양한 독자층을 아우르는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는 편이다.
이번 번역 부문의 기념할 만한 최초 수상작은 덴마크 작가 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관하여>(On the Calculation of Volume) 3권으로 결정됐다. 한국 작품이 수상하면 좋겠다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으나 결과를 보니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 덴마크 소설에 관심이 갔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에 빠진 여성의 일기 형식으로, 단 하루를 다루는데도 7부작으로 계획됐다고 한다. 현재 덴마크에서는 6권까지 출간되었고 1권부터 부커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2022년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부커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 장르소설에 관해 여러 기사가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보다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다소 옆 동네 잔치 같았다면 <저주토끼>의 소식은 꼬마 때부터 봤던 옆집 아이에게 경사가 났더라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첫 출간은 2017년이었고, 그전에도 수록작이 발표된 적 있으니 실제로 꼬마가 훌쩍 자랄 만한 시간이 흐르긴 했다. 그런데 이웃집들 경사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전미도서상, 필립 K. 딕상으로 이어지더니 올해에는 로커스상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한강은 부커상 관련 인터뷰에서, 국내 출간으로부터 10년도 넘게 지난 후에 상을 받으니 “(좋은 의미로) 꽤 이상한 느낌”이었다고 답했다. 확실히 번역 출간 소식은 국내의 발간 시기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로커스상 후보작 역시 정보라의 <붉은 칼>은 2019년, <한밤의 시간표>는 2023년, 천선란의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2021년에 처음 출간됐다. 김성일의 <불사의 왕좌에 바치는 피>(Blood for the Undying Throne)는 시리즈 1부가 2016년에 <메르시아의 별>로 발간된 적이 있을 뿐, 이 소설 자체는 국내에 출간된 적이 없다.
여기서 주지할 만한 사실은 번역이 일종의 큐레이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번역 출간이라는 필터를 거친 작품만이 다른 언어권 독자층의 반응을 받는다. 번역되기 전에는 회자되지 않던 책이 해외 문학상으로 인해 뒤늦게 ‘발견’되는 사건도 있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정소연은 국내에 번역할 SF 소설을 고를 때 큐레이션 역할을 중시한다고 종종 밝혔다.
한국 독자는 미국 SF 거장으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70년 전 소설보다 몇십년 후의 소설을 먼저 읽을 수 있다. 지금에 비하면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농도가 진한 작품에 구애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열린 상태로, 번역 출간에 의해 비로소 작품을 접하는 것이다. 이러한 번역의 영향력은 한국 소설의 해외 출간에도 적용될 만하다. 그러니 수상 불발 소식보다 번역 자체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장기적으로 더 커지기를 바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르소설과 그 번역에 관한 관심과 지지다.
심완선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