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영한 <침묵의 친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간과 사랑, 인간과 자연, 성과 사회에 대한 시적 성찰로 엔예디 감독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교감’과 ‘연결’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동시에 미국 유타주의 ‘판도(Pando)’가 떠올랐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사시나무가 따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에서는 하나의 뿌리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체이다. 그것을 하나의 개체로 볼 것인가, 다수의 집합으로 볼 것인가 논의 중이다.
영화는 1900년대 초, 1970년대, 코로나가 만연하던 2020년대를 오가며 세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들은 조연처럼 보이고, 한자리를 지키며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은행나무야말로 주인공에 가깝다. 지그시 굽어보는 은행나무의 시선, 몰입도를 높이는 절제된 조명, 명상적인 음악을 통해 시간의 절대성이 화면에 녹아 있다.
영화에는 20세기 초 대학에 최초로 입학하려는 여학생 크레테의 면접 장면이 나온다. 면접관들은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의 식물분류 기준인 성(性)에 대해 질문한다.
린네는 식물의 성을 인간의 성에 비유했다. 수술을 ‘남편’, 암술을 ‘아내’, 꽃잎을 ‘침대’ 등으로 빗댄 그의 설명은 오늘날에는 과학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당대에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꽃을 ‘성적 존재’로 해석한 그의 언어는 종교적, 보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역겹고 음란한 표현’으로 자연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비난받았다. 그 분위기는 영화의 배경인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암수딴그루가 독립해 존재하는 은행나무는 중국에서 음양을 상징하기도 한다. <본초강목>에는 암수가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를 맺는다고 기록돼 있다. 은행나무에 학명 ‘Ginkgo biloba’를 붙인 린네조차 성을 알지 못해, 이를 꽃이 숨어 있는 은화식물로 분류했다. 은행나무의 사랑은 린네에게도 끝내 보이지 않는 비밀이었던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어둠 속 천둥과 번개 속에서 오래 침묵하던 은행나무가 마침내 서로를 향해 응답한다. 땅과 하늘, 바람과 물, 수나무와 암나무, 인간과 자연이 한순간에 연결된다. 그것은 오랫동안 감춰졌던 생명의 고백이자, 린네도 알지 못했던 은행나무의 사랑이 마침내 스크린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은행나무의 ‘은밀한 사랑’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96년 일본 학자 히라세 사쿠고로에 의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