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위원회의 마지막 공식회의가 열렸다. 자문위는 전문가와 청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회의 주제는 ‘공적연금과 국가 역할’이었다. 공적연금으로 괜찮은 노후보장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리고 재정지속성 확보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가 논의됐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우 내 얘기를 하기보다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빠른 고령화 국면에서 결국 연금이란 것은 사회의 부를 큰 틀에서 재분배하는 것이니 출산과 고용, 기술혁신과 성장 같은 요소들을 개선시켜 사회의 질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 말한다. 특히 생애 후반기 고용의 질을 고르게 높이고, 이와 보조를 맞춰 연금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연금이란 사회보장제도가 국민들에게 보장해야 하는 노후 최저선과 적정선을 지켜내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를 위해 공적연금에 사회적 부를 재분배하는 원천은 연금보험료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연금 재원으로 보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누진적 조세가 활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바람직한 국가 역할은 연금 재정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철저하게 낸 만큼 받는 연금제도로 개편하는 것이라 한다. 대표 제안이 기존 연금가입자들은 국민연금에 남겨두고, 새로운 가입자들은 계층 간, 세대 간 재분배 장치가 없는 새 연금제도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인의 수명 증가가 미래세대의 재정부담으로 이어지지 않게 그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며, 고령화 국면에서 국가가 조세를 통해 재정을 보완하기보다는 자동조정장치를 통해 연금을 깎아 대응해야 하며, 저소득층 노후보장은 공공부조를 강화해서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내게는 두 입장의 간극을 줄일 재주도, 그럴 요량도 없다. 다만 공적연금에 관한 국가 역할을 말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지나치게 높고 그 핵심 원인은 낮은 연금액에 있다. 국민연금액은 월평균 70만원 선에 불과하다. 21세기에 첨단기술로 먹고산다는 나라에서 노인빈곤율이 30~40%에 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분명하다. 둘째, 한국은 지금부터 약 30년 동안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게 될 터이다. 이 시기 노동과 복지 전반에 격변이 이루어질 것인데 우린 이에 대응 혹은 적응(?)해야 한다. 셋째, 국내총생산(GDP)의 60%를 훌쩍 넘어버린 거대한 국민연금기금은 인구 격변기를 넘어 꽤 오래, 경우에 따라 2090년대까지도 연금재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이란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금의 인구 문제는 느린 인구정책은 물론 주거, 노동,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정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구 고령화 여파를 국민들이 모두 떠안도록 하기에는 변화가 너무 가파르다. 이에 국가의 연금재정 역할은 국고지원을 포함해 좀 더 직접적인 것이 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연기금은 보험료와 국고지원 부담을 상당 기간 낮춰줄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자동조정장치를 넣어 연금액을 더 낮추는 것은 노후생활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낮아 기초연금을 크게 높이기도 어렵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받는 노인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낮출 순 없다. 다른 나라가 고령화와 연금을 연동시켜도 국가가 보장하는 최저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핀란드의 최저 보장 수준은 평균임금의 23%, 스웨덴은 31%에 달한다. 현세대든 미래세대든 모두가 노인이 된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이라면,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적정 노후보장 원칙을 지키면서, 빠른 고령화라는 강을 다 같이 잘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