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선생님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과 지언(知言), 곧 “말을 아는 것”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지언은 단지 상대방의 말뜻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자는 “말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알아낼 수가 없다”(<논어>)고 말했다. 말을 안다고 함은 말뜻을 아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말한 사람을 알아내는 것, 곧 “지인(知人)”임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말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낸다는 일이 쉽지는 않다. 말로 자기 본색을 감쪽같이 숨기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맹자는 이러한 난관을 지언과 지인 사이에 말한 이의 마음을 안다는 “지심(知心)”의 연결 고리를 넣음으로써 넘어서고자 했다. 말을 안다고 함은 그가 한 말을 통해 그의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 사람을 알아낸다는 얘기다. 가령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이 치우친 말인지, 과도한 말인지 등을 먼저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가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 그의 마음이 무엇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럼으로써 말한 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을 좀 더 실현 가능하게 풀어낸 셈이다.
그럼에도 말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위정자의 말은 더욱 그러하다. 공자나 맹자 모두 위정자일수록 그 말은 투명하게 읽힐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위와 같이 말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도무지 그러하지 않다. 하여 한비자 같은 법가 사상가는 위정자의 말을 안다는 것은 그가 행한 실적을 파악하여 이전에 그가 한 말과 그 실적을 대조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다만 한비자의 말도 선거철이 되면 무기력해진다. 선거에서는 무엇을 해내겠다는 말이 주로 횡행하는데, 그가 자기 말대로 해내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그 마음을 읽어내고자 하고, 이를 토대로 그 사람을 파악하고자 하는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자와 맹자가 확신했듯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에 더욱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