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페트로스테이트를 보라.” 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컬런 헨드릭스 선임연구원은 최근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트로스테이트는 ‘석유’와 ‘국가’의 합성어로, 국가 경제와 정부 수입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는 나라를 뜻한다. AI가 데려갈 첨단 미래의 정치사회 구조가 ‘구시대 산업’이 지배하는 카타르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닮은꼴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국가 재정이론에 따르면, 근대 민주주의는 세수와 노동력을 징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세원이 토지에 묶여 있던 봉건사회와 달리, 산업혁명과 함께 유동 인구가 늘고 세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노동계급의 협상력이 커졌다. 과세는 협상을 낳고, 협상은 민주적 대의를 낳았다.
그러나 페트로스테이트에선 이런 과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카타르의 경우 석유·가스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40%, 정부 세수의 약 80%를 차지한다. 반면 이 부문의 노동력 고용 비율은 2%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대다수는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생산 활동으로부터 사실상 분리된 시민은 발언권이 축소된다. 사회에는 풍요가 넘쳐나지만 그 부는 소수에게 집중된다.
국가 경제와 정부 세수의 대부분을 AI에 의존하게 될 ‘AI스테이트’ 역시 이와 비슷해질 수 있다. 석유와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 비용이 큰 AI는 소수의 독과점 기업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휘두른다.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물론, 로봇화와 결합할 경우 육체노동까지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AI는 막대한 경제적 지대에 비해 고용하는 노동력 규모가 한 줌에 불과하다. 그렇게 보면 삼성전자의 성과급 투쟁도 결국 일회성 해프닝에 그칠지 모른다. 노동계급의 협상력은 약화할 것이고, 그들 역시 언젠가는 AI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제도가 이 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자리를 자동화하는 기업에 사실상 세금 절감 혜택이 주어진다. 사람을 고용하면 급여세를 내야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AI나 로봇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그레그 카사르 하원의원 같은 민주당 의원들이 “노동 대신 AI에 과세하라”며 AI세 도입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걷은 세금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직업 훈련을 지원하는 데 쓰자는 주장이다.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앤트로픽·오픈AI 등 AI 기업 주식에 50%의 일회성 세금을 부과한 후 이를 주식으로 납부받아 국부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AI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 국부펀드의 가치도 함께 높아질 것이고, 미국 국민이 누리는 혜택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AI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아이디어들이 너무 앞서나간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산유국임에도 국부펀드라는 묘책으로 ‘자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기업·노동조합이 한 테이블에 앉아 열린 상상력으로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AI에 휩쓸려 구시대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