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선거운동 기간뿐 아니라,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근 1년 이상 달려온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오랜 여정이 끝났다. 지역민들의 선택을 받은 이들과 그러지 못한 이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간이지만,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선택에 대한 결과를 4년 동안 받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투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4년에 걸쳐 돌아오기 때문이다. 1427년 12월, 세종이 용안 현감 구서와 장단 현령 최득하, 옥과 현감 진자번, 청양 현감 고신민 등을 임지로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수령은 예전의 제후(諸侯)와 같다. 백성의 일을 내가 친히 맡을 수 없으므로 그대들을 뽑아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몸으로 받들라. 백성들은 항심(恒心·변하지 않는 도덕적 마음)이 없어 절용(節用)하지 못하니 그대들은 백성들에게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해 생활을 즐겁게 하라. 근래 가뭄이 들고 금년 겨울은 기후가 불순하여 내년 일이 걱정되니, 각각 그 직책에 충실하여 성심껏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구휼하라.”(<세종실록> 1427년 12월12일)
지방관을 파견할 때 조선의 왕들이 으레 하는 말이지만, 세종의 말에는 특별한 힘이 실려 있었다. 백성들에 대한 마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관들이 자신을 대리하므로, 백성들은 지방관을 통해 왕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을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몸으로 받들어달라 당부한 이유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라고 했다.
세종의 이 말은 2300여년 전, 맹자가 양나라 혜왕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맹자는 왕도 정치 실천을 망설이는 혜왕에게 이념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덕목을 내놓았다. 집 주위에 다섯 이랑 정도 뽕나무를 심게 해 백성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게 하고, 닭과 돼지 등을 시기에 맞춰 기르도록 함으로써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나아가 한 가족이 100이랑 정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되, 농사철에 백성들을 동원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 도덕을 가르치는 학교는 그 이후의 문제였다.
이념 정치인 왕도 정치를 위한 덕목치고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러나 맹자는 효제(孝悌)와 같은 도덕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기반 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정적 소출이 없으면 도덕성을 지켜가는 마음, 즉 항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맹자의 말은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맹자는 양나라 혜왕을 향해, 이를 실천하고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백성의 삶을 우선시하는 왕이 훌륭한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최고의 이념 정치인 유학의 왕도 정치도 그 기반은 백성들의 안정적 삶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방관을 보내면서 했던 세종의 당부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자신의 정치가 먼 이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절용을 가르치고 농업과 잠업을 권장해 백성들의 생활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백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을 성심껏 어루만지고 구휼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왕정 시대를 지나, 지역 책임자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새롭게 선출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로 대표되는 많은 정치 이념들을 걷어내면, 결국 남는 것은 지역민들의 삶과 생활이기 때문이다. 내란 극복도 중요하고 보수의 이념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지역을 맡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권고이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