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선보여 말 많았던 ‘감사의 정원’이지만 막상 가보니 존재감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남쪽 이순신 장군 동상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북쪽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 쪽으로 몇분 걸어가니 그제야 왼편에 석제 조형물 ‘감사의 빛 23’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6.25m의 기념석 23개는 한국전 참전국 22개와 한국을 뜻한다. 어두워지는 오후 8시면 조형물들이 하늘로 빛을 쏘아 올린다. 일각에서는 그 모양이 ‘양갈비’ 같아 우스꽝스럽다거나, ‘받들어총’ 모양이 맞은편 미국대사관을 향한다고 비판한다. 정작 조형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디자인 단계에서 ‘받들어총’을 의도한 적이 없다고 한다. 조형물이 세종대왕 동상을 창살 안에 가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부러 조형물 뒤편으로 돌아가는 수고와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이는 다소 무리한 시각으로 보인다.
서울 핵심부 중요 공간의 기념물들
조선 시대·전쟁 기억에만 갇혀 있어
시민 참여로 일군 민주주의와 자유
현재의 역동성 담을 상징 만들어야
조형물의 용도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참전국의 헌신을 추모하는 공간이라 엄숙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자유로운 시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내가 찾은 날에는 어린이들이 조형물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넓은 광화문광장에는 앉아 쉬어갈 곳이 별로 없으니,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광화문광장은 행정 중추인 정부서울청사, 강북의 대표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과 이어진 서울 핵심부의 주요 공간이다. 한때 왕복 10차선 도로 한복판에 위치해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재구조화 사업이 진행된 이후로는 보행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은 그 현대사적 의미도 각별하다. 이곳에서 수백만명의 시민이 한 계절 동안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여 목표를 이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해 100만 인파 앞에서 야외 시복식을 열며 평화의 메시지를 나누고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다.
오랜 시간 광화문의 대표 상징물은 1968년 조성된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다. 2009년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서며 조선 시대 인물 2명이 광화문광장 남북에 자리하는 모양새가 됐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핵심 공간을 왕정 시대의 성군과 전쟁영웅이 앞뒤에서 지킨다.
조선 시대 인물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것은 광화문광장만의 사례는 아니다. 1000원권의 퇴계 이황, 1만원권의 세종대왕, 모자 사이인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5000원권의 율곡 이이까지 조선 시대 인물 4명이 지폐 앞면을 차지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지폐 앞면 인물이 20세기의 경제인, 교육자, 과학자라는 점과 대비된다.
조선은 위대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고, 강대국 중국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문화적·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 보기 드문 국가였다. 다만 ‘반만년 역사’의 상징물이 500여년 역사의 조선에 국한될 이유도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조선 시대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세계적 견지에서도 강인한 민주주의, 창의적인 문화, 강력한 경제를 갖춘 성공적인 국가다.
광장에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겠다는 의도에 공감하지만, 그 조형물이 전쟁을 기억하고 참전국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감사의 빛 지하에 위치한 미디어 체험 공간 ‘프리덤 홀’은 현재 시민이 누리는 자유의 연원을 참전국의 공로로 한정한다. 한국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아 민주주의 체제가 존속할 수 있었지만, 더 큰 의미의 정치적 자유는 시민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 흘린 피로 얻어냈다.
현대 광장의 상징은 70여년 전 전쟁의 비극적 순간을 넘어 현재의 역동과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광장은 국가의 정체성을 교화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민이 자유와 일상을 느끼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현재 광화문광장의 대표 상징물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인 것은 이들이 공동체 내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점과 관련 있을 것이다. 다수가 수긍할 현대의 상징을 상상해내지 못했다는 현실은 우리 공동체가 어느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한 증거다.
백승찬 문화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