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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을 만드는 리더들

입력 2026.06.03 22:50

수정 2026.06.0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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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목이 되지 않도록, 빠르게 결정하고 빠짐없이 논의드리겠습니다”라고 구성원들에게 말했던 것이, 막 팀을 맡게 된 내가 한 첫 다짐이었다. 비판을 무릅써가며 뭐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성격도 아니고, 포근하게 이야기 다 들어주는 집중력도 안 되니, 일이라도 빈틈없이 속도감 있게 잘해내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나 혼자 아등바등 짊어지지 말고, 일거리 잘 분배해서, 조직 내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 병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여러 제안들을 충분히 믿고 따라가도 될 거라 생각하면서도, 턱턱 걸리는 생각들에 멈칫한다. 쉬운 일부터,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보면 중요한 사안은 뒤로 밀린다. 일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생각보다 스스로 만족스럽지가 않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AI 시대 ‘일하는 개인’의 역할은 결국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이라는 여러 해설들을 접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AI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 선택하고, AI 에이전트가 밤새 만들어둔 결과물을 받아들인다. 오히려 AI의 생산 속도가 너무 빨라 ‘내가 병목’이라 외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쯤 되니, 미래의 일터에서 탁월하게 달라지는 것은 일의 호흡이 아닌가 싶다. 생산되는 양도 많고, 결정해야 하는 속도도 무척 빠르다. 일의 프로세스 안에서 사람이 결정할 구간을 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완성해주는 것이 AI 생산성 툴의 핵심 가치라지만, 그렇게 완성된 일들을 뜯어보고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일이다.

그동안 책임자 자리에 오르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풀고자 하는 문제만 있으면 누구나 리더가 되어 도구를 써서 생산물을 만들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제공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더 빠르게 기계와 협업해서, 더 많이, 더 나은 아웃풋을 내놓으려면 결국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피로사회, 과로사회의 미래가 마치 예견돼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구조의 기저에는 상당한 생산량의 공급을 떠받치는 수요가 있다는 가정, 빠른 변화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시장이 있다는 전제, 그 흐름을 뒤쫓는 충분한 규모의 팔로어가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만일, 사실 그 수요는 허상이고, 시장은 변화에 지쳐버리고, 팔로어들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각도로 흩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거창한 대량생산이 아니라 소량의 옥구슬 같은 영롱한 생산물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병목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일이 더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게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더 나은 고민을 하지 못하고, 더 깊은 통찰을 내놓지 못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구는 것, 그것이 진짜 병목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그런 리더들을 본다. 새로 짜인 한반도의 조직도에서는 이러한 병목의 운명을 거스르는 리더들이 촘촘히 박혔기를 늦게나마 바라본다.

유재연 한양대 글로벌사회혁신단 겸임교수

유재연 한양대 글로벌사회혁신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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