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할 때 종종 난감한 순간이 있다. 보통 참여자의 기준을 정해두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섭외하게 되는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면 아예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다. 얼마 전 진행한 그룹 인터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분명 시작 전에 받은 내용에는 취업 경험이 없으며, 구직활동이나 수입을 위한 업무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청년들의 명단이 있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몇몇 참여자들은 취업을 한 적이 있거나, 현재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거나, 느슨하지만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객관식 설문조사에 응답할 때 개인 간 범주 해석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개인 소득이 발생하고 있거나, 회사에 취업한 적이 있어도 응답자 기준에서 그것이 ‘취업’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취업한 적이 없다고 답하는 것이다. 구직활동 여부 혹은 취업준비 여부에 관한 기준도 다소 모호하다. 채용공고를 이따금씩 검색해보는 정도로는 구직활동을 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도 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취업준비라고 보기 어려워 ‘쉬었음 청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편견과는 다른 조사 결과들이 나오는 것도 이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쉬었음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구직 의지가 있으며, 취업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는 유형의 청년들이 이 집단 내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해왔다. 그렇다면 쉬었음 청년을 무기력하고 취업 의지가 전혀 없는 인구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계획해둔 질문들은 주로 이들이 취업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취업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도출된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참여자들의 발화를 통해, 이들이 일자리를 얻는 일의 중요성에도 동의하고 있으며, 무기력한 상태라기보다는 자신의 페이스 내에서 도전이나 계획, 탐색을 지속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쉬고 있다는 한 참여자는 인생에서 쉼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물으며 쉬었음 청년을 문제로 보는 시선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 순간 준비해온 질문들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그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어쩌면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연구자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일종의 상징폭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반복적으로 배우고 가르쳐온 좋은 질적 연구의 기준과 미덕에 관해 이 인터뷰 내에서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연구 이전에 대상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실제 마주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한계를 드러낸다. 그 차이를 발견하고 성찰하며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가 함께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좋은 질적 연구가 만들어진다는 원칙. 제한된 시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이 원칙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다른 각도에서 즉흥적으로 던진 질문과 대화를 통해 보다 솔직하고 적어도 내게는 새롭게 들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삶에서 직업과 일이란 여전히 아주 중요하지만, 아니 중요하기 때문에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삶의 큰 부분이기 때문에, 일로 인해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또 이전의 학업과 노동 경험, 일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일이 어떻게 자신을 불행하게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준비의 시간이 더 철저히 필요한 것이다.
쉬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도, 사실 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해를 낳는 쉬운 명명을 넘어, 그 이름으로 인해 놓치게 될 이해를 모색해야 한다. 선거 이후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청년의 투표율이나 지지 정당 이야기도 마찬가지이길 바란다.
김선기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