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보수’ 강원·대전서도 진보 약진…공공성 확대 등 기대
진영 간 교육 정책·철학 대결 실종…“진보교육 승리는 아냐”
16개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12곳에서 우세를 보이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선거에서 진보 9곳, 보수 8곳으로 팽팽했던 교육감 지형이 4년 만에 다시 진보 우위 구도로 재편된다.
다만 이번 교육감 선거는 진영 간 교육 정책·철학 대결이 사라진 채로 치러져, 이번 결과를 ‘진보 교육의 승리’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표심은 정책이 아닌 출범 1년을 맞은 이재명 정부의 높은 지지율과 현직 교육감의 인지도 등에 먼저 움직였다. ‘교육보다 정치가 앞선 선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0시20분 현재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 개표 결과를 보면 진보 성향 후보들이 12곳에서, 보수 성향 후보들이 4곳에서 각각 당선 또는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후보는 서울·경기·인천·강원·충남·대전·울산·전남광주·전북·부산·경남·제주에서, 보수 후보는 대구·세종·충북·경북에서 각각 우세를 보였다.
특히 현직 교육감이 보수인 경기·강원·대전 등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되면서 뚜렷한 진보 우위로의 판세 변화가 나타났다. 현직 교육감 대부분이 재선에 성공한다는 ‘현직 프리미엄’도 보수 진영에서만 힘을 쓰지 못했다. 이 같은 진보의 약진은 차별화된 교육 정책·철학보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높은 지지율에 기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선거에는 서울(정근식)·경기(임태희)·인천(도성훈)·강원(신경호)·충북(윤건영)·전남광주(김대중·이정선)·부산(김석준)·대구(강은희)·경북(임종식)·제주(김광수) 등 10곳에서 현직 교육감이 출마했다. 이 중 현직 교육감이 진보 성향인 서울·인천·전남광주·부산 4곳은 모두 현직의 연임이 유력했다. 반면 현직 교육감이 보수 성향인 경기·강원·충북·대구·경북·제주 6곳 중에서는 충북·대구·경북 3곳만 현직이 우세를 보였고, 경기·강원·제주 3곳은 진보 후보에 뒤처졌다.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경기도에서는 진보 성향 안민석 후보가 보수 현직 임태희 후보를 5%포인트 가까이 앞서고 있다. 경기는 2022년 선거에서 임 후보가 당선되며 10여년 만에 보수 진영이 탈환한 지역인데, ‘여권 정치인 출신’을 앞세운 안 후보가 되찾은 것이다. 강원에서는 진보 성향 강삼영 후보가 보수 현직 신경호 후보를, 제주에서도 진보 성향 고의숙 후보가 보수 현직 김광수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보수 교육감이 내리 3선을 한 대전에서도 진보 성향 성광진 후보가 우세하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변수는 ‘단일화 실패’였다. 진보·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진영을 대표하는 단일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진보 3명, 보수 4명, 중도 1명 등 모두 8명이 출마하면서 교육감 직선제 이후 가장 많은 후보가 난립했다.
다만 개표 결과를 보면 단일화 실패가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르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는 현직 교육감인 정근식 후보가 41.0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이 유력시된다.
전남·광주 통합 이후 처음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는 현직 전남교육감인 김대중 후보가 현직 광주교육감인 이정선 후보에 우세를 보였다. 충북 윤건영 후보, 대구 강은희 후보, 경북 임종식 후보 역시 현직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우위를 유지하며 보수 진영의 마지막 거점 역할을 했다.
다만 교육계는 이번 선거 결과를 과거처럼 ‘진보 교육의 승리’로 단순 해석하는 것은 경계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진보·보수 후보들은 인공지능(AI) 교육, 교권 보호, 기초학력 향상 등을 공통적으로 내세웠다. 과거 무상급식이나 학생인권조례처럼 진영 간 대립을 상징하던 의제는 크게 약화한 상태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진보·보수 후보들의 정책 유사성이 큰 선거였다”며 “AI 교육, 교권 보호, 현금 지원 등 핵심 공약은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에 정책보다 정치적 배경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도 “진보 교육감이라고 해서 공통 강령이나 정책을 공유하는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며 “이번 선거는 진보 교육에 대한 선택이라기보다 현직 교육감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판단한 결과에 가깝다”고 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향후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보 9명 대 보수 7명으로 나뉜 교육감협의회가 진보 성향 교육감 중심으로 재편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과 교육 공공성 확대 등 주요 현안에서 공동 대응이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김승호 한국교육정책연구원 사무국장은 “그동안 교육감협의회는 진보·보수 구도가 팽팽해 입장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진보 교육감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면 협의회의 정책 대응력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