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반도체 성과급 논란은 우리 사회에 초유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부딪치는 이 첨예한 갈등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 흔히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자본주의가 생존을 위해 내놓은 연장술이라고 말한다. 이 개념의 핵심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상호 배려’다. 기업은 가치사슬 내의 이해관계자를 존중해야 하고, 노동조합은 연대와 평등, 그리고 약자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ESG 관점에서 바라본 성과급 사태와 일련의 노동 현안들은 우리 사회 지배구조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구조란 조직의 의사결정 체계와 통제 시스템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SK하이닉스 경영진, 대기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 그리고 민주노총과 금속노동조합이 그 대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자기 이익 추구’다. 아이러니한 점은, 각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며 이익을 좇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지점에서 마주치고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SK하이닉스 경영진의 행태를 보자. 만약 경영자가 자신의 의사결정이 회사를 지탱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했다면 그런 일방적인 결정은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 의식도, 사회적 책임 의식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에게 이해관계자란, 일부 ‘슈퍼 을(乙)’을 제외하면 언제든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존재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익 좇는 경영진·경제단체·노조
대기업의 현안을 대리하는 경제단체의 행보 역시 패착의 연속이다. 최근 가장 큰 쟁점이었던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과정이 대표적이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제3조(노동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는 개정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반면 제2조(사용자 범위 및 쟁의 대상 확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산별노조나 직무급제 도입 등 더 성숙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경제단체는 제3조 개정을 저지하는 데만 극렬히 몰두하다가, 결과적으로 제2조 개정까지 자초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다. 현재 기업들의 최대 현안인 하청업체 교섭권 문제가 걸린 제2조를 두고, 세간에서 여전히 ‘노란봉투법(제3조)’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것만 봐도 경제단체의 혜안과 전략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경제단체와 대립하는 노동계 역시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은 ‘산업별 공동교섭’을 강령으로 채택했지만, 이는 구호일 뿐이다. 민주노총 산하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역시 강령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바탕으로 금속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글자에 불과하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핵심은 민주노총의 참여이지만, 상부 조직은 여전히 불참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현장의 산하 조직들은 노사정 대화를 원하고 있다. 2022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유최안 부지회장이 31일간 ‘철제 감옥’ 파업을 벌였을 때, 하청지회는 노사정 대화를 간절히 요구했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정규직 노조인 대우조선해양지회는 하청지회의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되자 금속노조 탈퇴를 추진하기까지 했다. 모두 같은 금속노조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민들은 대개 민주노총의 핵심을 금속노조로, 금속노조의 핵심을 완성차 노조로 인식한다. 노동계 내부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난 4월2일, 금속노조의 이름으로 발표된 한 기자회견문은 이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완성차 3사(현대차·기아·한국지엠) 노조가 주도한 이 회견에서 이들은 “AI 도입과 디지털·전동화 전환에 따른 구조조정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노사정 협의체 구성에 즉각 나서라”고 요구했다.
독점 지배구조 깨고 상생 고민해야
여기서 제안된 노사정 협의체 구성안을 보면 노동계(금속노조와 완성차 3사 지부), 사측(완성차 3사 및 부품사 대표), 정부(산업통상부, 고용노동부 등)가 모이자는 것인데, 사측에서는 부품사 대표를 참여시키는데 정작 노측에서는 ‘부품사 노조’를 배제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산별 연대’를 외치던 강령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고용 안정을 위한 보호막으로 삼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이중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가.
SK하이닉스발 성과급 사태는 삼성전자로 번지며 심각한 갈등을 노출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출구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별 성과급 제도는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직무급제’다.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이 직무급을 더욱 세분화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착지는 ‘동일회사 동일복지, 그러나 기여도에 따른 다른 임금’이다. 구성원의 세부적인 기여도를 정밀하게 보상해주지 못하고 집단으로 차등을 두는 획일적인 성과급 제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마침 경제단체가 극구 반대하던 노동조합법 제2조가 시행에 들어갔고, 금속노조의 핵심인 완성차 3사 노조는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노사정 협의체 노동자 대표단에 부품사 노조 대표를 당당히 참여시키고, 개정된 노동조합법 제2조의 취지에 맞게 상생의 교섭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경제단체와 민주노총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면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치킨게임’의 형국이다. 파국을 막기 위해 과연 누가 먼저 핸들을 꺾을 것인가. 이제는 이기적인 독점의 지배구조를 깨고, 진정한 의미의 ESG 상생을 고민해야 할 때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