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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방산·호르무즈…한국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

입력 2026.06.04 19:58

수정 2026.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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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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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년을 맞은 지금도 현 정부의 외교를 단순히 ‘동북아 균형 외교’ 수준으로만 해석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관리하면서 경제·기술 분야 협력의 접점을 복원하는 한편, 일본과는 안보·군사는 물론 공급망과 인공지능(AI)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혀왔다. 미국과는 AI, 통상, 핵잠수함, 전시작전통제권, 북핵 문제 등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실용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서도 절제된 관리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혈맹인 미국의 글로벌 전략마저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 환경에서 한국의 생존 공간을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즉, 거창한 ‘중재자’ 역할을 통한 안정화를 시도하지 않고 추가적인 역내 불안정화를 막기 위한 위험관리 모드라고 하겠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미·중·일 지도자들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외교적 안정감을 보여줬다.

더 중요한 변화는 현 정부의 위험관리형 외교·안보의 범위가 더 이상 한반도와 동북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북아 4강 사이에서의 균형 유지와 대북 대응을 넘어 인도·태평양과 유럽, 대서양 그리고 그 사이의 중동을 연결하는 새로운 안보 이슈들이 수렴하며 한국 외교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한국은 올해 3월 영국·프랑스 등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관련 공동성명에 참여했다. 이란·미국(이스라엘) 전쟁을 먼 지정학 이슈가 아닌 에너지 수급과 해상 물류, 산업 공급망 충격, K방위산업 생태계, 국제인권규범, 나아가 미국 글로벌 안보 전략 변화와 직결된 군사·경제·기술 안보의 핵심 이슈로 명확히 인지하고 대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은 더 이상 지역적 틀 안에만 머무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저성장과 인구 감소, 산업 경쟁력 둔화로 상징되는 이른바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외교·경제적 활동 반경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에 한국은 프랑스, 영국, 인도, 베트남 등 ‘대안 국가’와도 새로운 연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관심과 자본이 집중되고 있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AI반도체와 소버린AI를 위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중심으로 한 AI 풀스택(Full Stack) 영역은 한국의 새로운 전략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 4.5세대 전투기 KF21의 양산을 시작으로 연간 200억~300억달러 규모 수출과 글로벌 방산 강국 4~5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는 방위산업이 더해지면서, 한국은 글로벌 안보 컨버전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20년대 중반, 현 정부는 글로벌 외교·안보 무대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국제사회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글로벌 중견 선진국으로 한국의 역할을 재정의, 재배치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실용주의적 임기응변 기조의 한계도 존재한다. 현 정부 외교의 향후 4년은 이 지점에서 읽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위기관리 전술 차원의 대응을 넘어 한국의 글로벌 전략을 설계하고 이를 실행하는 일이다. 그만큼 한국의 외교 전략은 세계 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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