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사회파 범죄드라마 <허수아비> 포스터.
6월3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내란을 옹호하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민을 압박했던 세력이 다시 표를 구걸하며 민주주의의 무대로 돌아오는 모습은 거대한 농담 같았다. 대통령의 권력만으로도 부족해 군대와 경찰 등을 동원하며 국가폭력을 행사한 집단이 다시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국가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군대와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 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에, 개인은 극도로 취약하다. 그렇기에 국가폭력은 시효가 없어야 하며, 개인의 범죄보다 더욱 엄중하게 다뤄야 한다.
지난 5월26일 종영한 드라마 <허수아비>를 보며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직면했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의 모티프이기도 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지금은 이춘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수아비>는 실화의 재현이나 범죄 스릴러의 관습에 쉽게 기대지 않는다. 괴물을 쫓는 형사의 땀방울과 함께 야만적인 국가 권력이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첫 회 2.9%에서 최종회 8.1%로 치고 올라온 묵직한 뒷심은, 웰메이드 범죄물에 대한 갈증과 여전한 현실의 부조리가 맞닿았기에 가능했다.
동료 경찰의 비리를 고발한 강태주 형사는 고향인 강성으로 좌천된다. 이미 진행 중인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데, 하필이면 담당 검사는 고등학교 때 그에게 학교폭력을 주도한 차시영이다. 차시영의 아버지는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이었고, 이제는 여당 국회의원이다. 첩의 자식인 차시영은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불법과 폭력을 저지르면서 사건 해결에 몰두한다.
<허수아비>의 연쇄살인범은 분명 끔찍한 악이지만, 우리는 범인 이상으로 개인의 실적과 조직의 안위를 위해 평범한 개인을 고문하고 범인으로 조작하는 국가 권력에 분노하게 된다. 분노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 뿌리를 둔다. 영구 미제로 남을 것 같았던 현실의 연쇄살인은 2019년 DNA 분석을 통해, 처제 살인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진범으로 특정되며 해결됐다. 그리고 진범의 자백이 이어지면서 묻혀 있던 끔찍한 진실이 드러났다. 모방 범죄의 누명을 쓰고 20년을 복역한 이가 완전히 무고했으며, 아동 살인의 증거를 은폐하고 유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인을 잡는다는 명목 아래 무고한 시민을 불법 연행하고 고문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었다.
<허수아비>는 영웅적 형사 서사를 배제하고, 무능하면서 폭력적이었던 당시 검찰과 경찰의 추태를 감정 과잉 없이 건조하게 그려낸다. 괴물을 잡는다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 국민을 잡아먹은 공권력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기존 범죄물에서 피해자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도구나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파편화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허수아비>는 범죄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대신, 국가폭력에 의해 일상이 파괴되고 비참하게 내버려진 희생자와 그들 가족의 삶을 집요하고 세밀하게 조명한다. 피해자들에게 서사와 존엄을 돌려주는 것은 <허수아비>의 조용하지만 뚜렷한 성취다.
또한 1989년과 2019년을 넘나드는 <허수아비>의 정교한 구성은 단순히 극적 변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군부독재의 억압적 체제 속에서 공고화된 권력의 카르텔이 세기가 바뀐 뒤에도 굳건히 작동하고 있다는, 절망적인 현실의 증명이다. 조작 수사로 무고한 이의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들은 처벌받기는커녕 훈장을 달고 경찰 수뇌부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다.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과거를 세탁한 기득권은 아무 반성 없이 권력 시스템 뒤에 숨는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30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의 권력 집단은 정말 달라졌는가. 국가의 폭력은 지금 누구를 짓누르고 있는가.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끝까지 응시한 <허수아비>는 섣부른 ‘사이다’ 전개나 조급한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봉합하지 않는다. 복수와 응징이라는 얄팍한 카타르시스에 기대지 않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권력의 야만과 이를 침묵으로 감싸는 시스템의 누추함을 마주하게 한다. 30년이 지나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파헤치며 깊은 여운을 남긴 <허수아비>는, 역사의 환부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성숙한 사회파 범죄 드라마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