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연인,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둘 중 하나를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면?” 1번 카카오톡 대화 기록 전체. 2번 인공지능(AI) 대화 기록 전체. 이 질문을 처음 접한 곳은 SNS였다.
연인이나 배우자,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대화 기록과 챗GPT 같은 AI와의 대화 기록 중 하나를 선택해 전체 공개해야 한다면 어떤 기록을 공개할 것인가를 묻는 일종의 밸런스 게임이었다. AI와의 대화 기록을 공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댓글에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어떤 대화 기록을 공개할지 고민했다. 이후 다양한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의 유사한 질문을 접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메신저 기록과 AI 대화 기록을 뒤적이며 어느 쪽을 공개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먼저 카카오톡을 보자. 그곳엔 오랜 시간 나와 타인이 주고받은 대화 기록이 있다. 가족 간에 안부를 묻는 질문과 상사에게 보낸 영혼 없는 답변이 있다. 친구와 주고받은 누군가의 험담과 연인과 주고받은 둥글고 날 선 말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나의 대화 기록’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내가 사회 속에서 맡아온 모든 배역의 기록에 가깝다. 직장인, 연인, 친구, 부모, 자식이라는 사회적 역할 안에서 주고받은 말들의 집합이다.
이 기록의 공개를 망설이는 마음의 정체는 분명하다. 나와 타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지만, 상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상사와의 채팅방에서는 한없이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대답하면서도, 동료와의 채팅방에서는 상사의 험담을 늘어놓는 이중적 모습이 그렇다. 오래 사귄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친구들과의 채팅방에서는 한숨을 내쉬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긴 어렵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보호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서툰 노력 끝에 나온 말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본질적으로 나의 본심을 조금씩 깎고 다듬어 상대가 원하는 형태로 건네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카카오톡이 폭로하는 것은 우리의 악함이라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면을 바꿔 써가며 애써 사회적 존재로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흔적에 가깝다.
AI와의 대화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가면을 벗은 자리가 아니라 애초에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던 자리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이 증상은 큰 병일까?” “헤어지는 게 맞을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AI와의 대화 기록에는 업무나 학습을 위해 던진 질문 외에도 우리가 사람 앞에서는 걸러냈던 ‘바보 같은 질문’과 ‘한밤중에 느낀 불안’이 포함돼 있다. 솔직함의 농도도 다르다. 판단에 대한 두려움과 거절에 대한 걱정, 소문의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 검열이 없다.
그렇기에 AI와의 대화 내역이 폭로하는 것은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은 우리의 민낯이다. 메신저 대화 내역 공개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관계와 사회적 지위의 상실’을 우려한다면, AI와의 대화 내역 공개를 망설이는 사람들은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은 자신이 드러나는 ‘존재론적 위기’를 우려한다.
누구와 더 사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AI를 업무나 학습의 용도로만 사용한 사람은 AI와의 대화 내역을 공개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메신저를 업무나 단순한 안부를 주고받는 용도로만 사용한 사람도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더 쉽게 메신저 대화 내역 공개를 선택한다. 우리가 밸런스 게임을 통해 물어왔던 진짜 질문은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은 누구와 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나요?”
우숙영 디자이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