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3일, 베이징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날. 페르시아만의 수평선 위로 기묘하고 압도적인 장관이 펼쳐졌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 집결한 700여척의 중국 대형 상선들이 미국 함대를 동·남·북 세 방향에서 서서히, 그리고 조직적으로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배수량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0척이 위용을 드러냈다.
수에즈 운하조차 통과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이 쇠붙이의 거인들 앞에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은 문자 그대로 난쟁이처럼 보인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을 선봉으로 내세운 수백척의 중국 상선단이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 해군을 완포위한 이 장면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다. 베이징을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무언의 압박이자, 정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시위였다.
이 광경은 동시에 지정학적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동의 화염이 동아시아로 번질 수 있는 연결고리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불사할 결심을 굳힌다면, 이 상선단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의 해양판(海洋版)으로 미 항모전단을 몰아붙인 후 호르무즈 해협을 강제로 개방시킬 수 있다.
거대한 민간 선박들이 군사무기가 되는 이 회색지대 전술 앞에서 미 해군의 교전 수칙은 처음부터 무기력하다. 상선에 함포를 겨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 미국은 갇힌다.
미국이 이란에 구사해온 고전적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는 이제 구조적 파산 상태다. 단지 이란의 강력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능력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이란 봉쇄선은 중국 상선에 의해 조용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그 중국 상선단의 배후,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에는 인민해방군 해군 함대가 언제든 중동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전투 태세를 갖춘 채 대기하고 있다. 이 현상의 뿌리를 파헤치면 단순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기반의 붕괴라는 더 깊고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숫자는 냉혹하다. 2023년 기준 중국의 연간 선박 건조량은 세계 전체의 약 47%를 차지한다. 같은 해 중국 조선소들이 인도한 선박은 총 423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달했다.
반면 미국의 민간 조선업은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미국이 연간 건조하는 상선은 전 세계 물동량의 0.1% 이하로, 중국의 수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조선 분야의 격차는 더욱 치욕적이다. 중국은 매년 수십척의 초대형유조선(VLCC·Very Large Crude Carrier)을 찍어낸다. 미국이 보유한 민간 유조선은 전 세계 선대의 1% 남짓에 불과하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2015년 이후 매년 평균 8~10척의 주요 수상전투함을 취역시키고 있다. 2024년 기준 중국 해군의 총함정 수는 약 370척으로 미 해군의 290척을 이미 수적으로 앞질렀다. 미국의 군함 건조 가능 조선소는 전국에 7곳에 불과하고 심각한 인력난과 공급망 붕괴로 건조 일정이 수년씩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다.
반면 중국의 군사용 조선 능력은 미국 전체의 200배 이상이라는 분석이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버젓이 기재되어 있다. 이 수치는 과장이 아니다. 현재 중국 최대 조선소인 장난(江南) 조선소 하나의 규모가 미국 모든 군함 조선소를 합친 것보다 크다.
군사적 충돌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면서 동시에 가장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은 압도적 수량의 상선과 군함을 앞세워 해양 군사 투사 능력에서 미국을 서서히, 점진적으로 잠식해 들어간다. 마치 미국의 피를 한 방울씩 빼내어 서서히 빈혈로 쓰러지도록 유도하는 회색지대 전술이다. 분쟁이 아닌 존재감으로, 교전이 아닌 포위로, 위협이 아닌 기정사실화로 판을 바꾼다. 인도·태평양 전체를 중국의 질서로 편입시킨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이를 ‘전략적 안정’이라는 고상한 언어로 포장했다. 그 안정이란 미국이 중국의 패권을 묵인하는 안정이다.
미국이 중국의 요구에 더 이상 답변을 미룰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란과의 전쟁을 지금 당장 종결하고 중동에서 철수한 미군을 인도·태평양으로 재배치하든지, 아니면 중동에 발목이 잡힌 채 중국의 해양 지배를 용인하든지 둘 중 하나다. 중국의 도전이 미국의 턱밑까지 왔다. 미국 내 반중 강경론자들이 일제히 이란 전쟁 종결을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