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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치도, 사회 운동도 제빵도…느리되 정성껏

입력 2026.06.04 20:19

정의당 전남 순천 지역위원장

‘우리밀이야기’ 대표 강병택

강병택 우리말이야기 대표가 전남 순천 별량면 가게에서 반죽하며 빵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아침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강병택 우리말이야기 대표가 전남 순천 별량면 가게에서 반죽하며 빵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아침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엔 빵 굽고 낮엔 이장 업무
이주민센터 등에 정기적 빵 나눔
공동밥상 등 농촌 활성화부터
이주노동자 인권 향상 등 노력
“마을 알아야 민주주의도 가능”
소수당 소신 “진보 운동 숙명”

“막걸리 효모로 르방(천연 발효종)을 만들어요.” 전남 순천시 별량면 빵 가게 ‘우리밀이야기’ 대표 강병택이 초코바게트를 성형(모양내기)하며 말했다. 원래 식빵, 단팥빵, 슈크림빵 같은 평범한 빵들만 만들었다. 지난해 말 ‘새로운 빵을 시도해보시라’는 둘째 딸 권유로 초코바게트에 캄파뉴, 치아바타 같은 빵을 시작했다.

지난달 12일 아침 우리밀이야기에서 만난 그는 “빵은 내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가 그 방식 중 하나다. 모양내기 쉽지 않은 우리밀에 들여야 하는 정성, 천연 발효에 녹여내야 하는 세심함, 반죽부터 저온 발효를 거쳐 굽기까지 열네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숙성도 말하는 듯했다.

강병택이 빵을 처음 만든 건 1997년이다. 1989년 성균관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으로 수배 생활을 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등 14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받았다.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97년 순천에 내려간 뒤 돈을 벌면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형이 빵집을 했어요. 새벽 일찍 빵 만들어놓으면 운동하러 싸돌아다닐 수 있겠더라고요.” 그해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2002년 전남 광양, 2004년 순천에 가게를 냈다. 별량면으로 이사 온 건 2012년, 이곳으로 빵집을 옮긴 건 2022년이다. 2004년 이후로 우리밀로만 빵을 만들었다. 빵집의 철학도 세워나갔다. “우리밀과 유정란으로 건강한 빵을 만들며 서로 나눔 하는 행복한 마을 빵집을 지향합니다.” 가게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다. 매주 토요일 카리타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순천 이주민센터에 정기적으로 빵을 보낸다. “빵 남으면 다른 동네 이장님들한테 전화해서 가져가라고도 하죠. 정의당에도 고생한다고 보내고요. 돈 안 되는 일은 잘합니다.”

우리밀인생 20년, 빵인생 30년. 이 시간은 정치와 운동의 시간에 포개진다. 정의당 전남 순천시 지역위원장, 전남 이주노동자 인권 네트워크 공동대표, 별량면 원산마을 이장까지 5개 직함을 가졌는데, 나머지 일에도 느리되 정성 가득한 삶의 방식을 적용하며 살아간다.

이장 일은 전 이장 부부가 제주항공 참사로 사망한 뒤 하게 됐다. ‘젊은 사람’이 없어 50대 후반인 그가 맡았다고 한다. 동네 경조사 챙기기, 도로변 가로수 가지치기, 농번기 마을 공동급식, 각종 고장 수리 같은 일들을 한다. 여러 마을 사람들과 어린이, 청소년 책 읽기 교실, 성인 건강국악교실 등을 이어간다. ‘청소년 정책마당’은 “아이들이 마을 주민으로서의 자기 역할들을 하는 마당”이다. 지난해에는 청소년들이 국도에 로드킬 방지 간판을 달자고 제안한 게 순천시 예산에 잡혀 집행됐다.

최근엔 농촌주민생활공동체 서비스 ‘같이 준비하는 밥상 공동체’에 참여했다. 매주 목요일 여러 활동가와 함께 반찬을 만들어 5개 마을 노인들에게 배달한다. “혼자 사시는 분들은 물에 밥 말아 김치랑 먹거나 하는 정도죠.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 순천시 외서면 같은 덴 식당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동권도 침해받는다. “어르신들은 라면 하나 사러 나오려면 왕복 5시간 걸려요. 버스가 하루 4~5회밖에 없어요.” 의료나 돌봄, 교육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배차 시간으로는 등교에 맞출 수 없어 막내가 순천 고모집에 가 있어요.”

강병택은 “국가가 의식주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들은 하는데, 인구 소멸 지역 마을엔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복지관도 없다”고 했다. 그는 식사나 돌봄 문제를 인권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 일자리도 돌봄이나 밥상 공동체 같은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맨날 풀만 뽑는 자리만 내놓을 게 아니라요. 돌봄 네트워크에선 ‘오늘 누가 밥 먹으러 안 나왔대, 누가 아프대, 약은 먹었대’ 하는 게 확인돼요.”

생활정치에서 성과를 내려 한다. “‘이장도 해보지 않은 자는 군수 같은 거 하지 말라’죠. 마을이 어떤지도 모르고 맨 인구 많은 데서 민주당에 이쁜 사람 시켜놓고, 선거비나 잘 빼먹을까 해서는 마을 민주주의가 진행될까요.” ‘마을 민주주의’ 문제도 더 깊게 고민하게 됐다. “주민조직들도 관이 관리하기 편한 방식으로 진행돼요. 주민자치회, 이장협의회, 노인대학 같은 데를 보면, 선거조직인 데도 많아요. 개발 인허가나 자기 사업 같은 이권과도 연결되고요.”

이권 때문에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도 악화한다고 본다. “관에서 개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사람 대부분이 동네 유지들이에요. 관에서 단속도 잘 안 해요.”

‘자리’만 놓고 보면 정치인 강병택의 ‘외적 성과’는 거의 없다. 진보신당, 노동당, 정의당 때 각각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에 출마해 다 떨어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까지 다 팔아먹었죠.” 자처한 길이다. 여러 ‘동지들’이 현 민주당 쪽으로 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민주당 입당 제안도 여러 차례 거절했다. “욕심이야 왜 없겠습니까? 자리 얻는다고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요.” 그는 “저나 소수 정당의 숙명이다. 소수 정당을 벗어나는 순간 진보 정치 운동가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흔들릴 때는 후배들의 죽음을 떠올리곤 했다고 한다. “김귀정 열사 사망 때 백병원 사수 투쟁을 했어요. 1996년 노동 해방을 외치다 분신한 황혜인 후배도 계속 생각나요.”

노동 중심 진보 정치 실현을 위해 애쓸 뿐이라고 했다. “대학생 때야 조국, 박노해 같은 사람들 보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 삶의 방식을 직접 선택하고, 내 운동을 계속 만들어나가려는 것일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죽을 때까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저 운동하고, 정치하고 빵을 구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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