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과 국왕
계승범 지음
역사비평사 | 268쪽 | 1만8000원
단종에게 ‘왕과 사는 남자’가 있었다면, 광해군에게는 ‘왕의 말을 전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서국. 평안도 만포에서 북방 여진을 상대로 통역 업무를 맡아본 향통사였다. 본인은 평민이고 아내는 노비였으니, 그 시절 기준으로 ‘상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후금의 도성 허투알라와 조선을 오가며 누르하치와 광해군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다.
<상놈과 국왕>은 명·청 교체기 조선의 외교 정책과 시대 상황을 광해군과 하서국 두 인물을 중심으로 엮어내는 책이다. 만주의 건주여진을 통합한 누르하치는 1616년 후금을 세우고, 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둘 사이에 낀 조선에서 광해군은 어떻게든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후금의 국서를 조선에 전하고, 광해군의 화친 의사를 후금에 전달하는 ‘아바타’로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인물이 하서국이었다.
책은 광해군의 외교를 ‘중립외교’가 아닌 명에 대한 사대를 유지한 채 후금과 몰래 교섭한 ‘이중외교’로 본다. 문제는 조선 지배 엘리트의 세계관이었다. 왜란으로 망해 가는 나라를 구해준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입은 이들에게 명나라는 군신(君臣)을 넘어 부자(父子) 관계였다. 사대 의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조선이라는 유교 국가의 정체성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결국 신료들은 국왕 광해군의 정통성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끝에 ‘인조반정’이 있던 셈이다. 하서국은 1622년 후금 지도부(홍타이지가 이끄는 강경파)에 의해, 광해군은 그 1년 뒤 조선 신료들(주자학적 화이론자 강경파)에 의해 물리적·정치적 죽임을 당하게 된다.
명나라 중심의 동북아시아 질서가 공고할 때 조선의 외교 정책은 단순했다. 중화 문명의 상국을 섬기며, ‘소중화’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다. 하지만 국가의 자위력을 갖추지 못한 채 양국 사이에 낀 조선에서 경직된 세계관은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조선은 질 줄 알면서도 호란을 피하지 못했다. 과거 역사로부터 지금, 여기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