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6·3 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의 서울 송파·강남·광진구 투표소 14곳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선거무효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소송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에 따라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정도가 실제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준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안 검사 출신 A변호사는 4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선거무효 소송이 진행된다면 “법원은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가 전체 중에서 얼마인지 등 선거구별 영향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전례가 없어 독일 같은 해외 유사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고 했다. 2022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2021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베를린 지방선거가 무효라고 결정해 재선거가 열렸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투표소에서 오후 6시 전에 번호표를 받은 유권자에 한해 투표 마감시간을 오후 10시로 연장했다. 투표가 이뤄지는 동안 나머지 투표소는 개표를 진행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오후 6시 정각에 예정대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선거일 오후 6시를 투표 마감시간으로 정하고,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규정이 무색해진 것이다.
투표할 의사가 있었으나 투표용지 부족을 이유로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의 규모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또 공식 투표 마감 시간을 넘겨 투표한 유권자들이 개표방송이나 출구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평가하기는 어렵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소마다 투표함을 1개만 사용하도록 규정해 선관위는 사고 투표소의 오후 6시 이후 투표를 별도 집계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선거무효 소송을 예고한 상태다. 당이나 후보자는 소송 전에 먼저 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청을 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도 개표를 강행한 선관위가 소청을 인용할 가능성은 낮다. 선관위가 소청을 각하·기각하면 10일 내 법원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이 선거무효 판결한 사례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공직선거법은 규정 위반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돼야 무효 판결하도록 규정한다. 단순한 규정 위반만으로는 선거 무효가 되지 않는다. 만약 법원의 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일부 선거구만의 재선거도 가능하다.
선관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전날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간부들을 형법상 직무유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모두 ‘고의성’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다. 선관위는 투표율 예측에 실패해 투표용지를 충분히 출력하지 못했다고 해명 중이다.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B부장판사는 “투표용지를 적게 출력하는 정책적 판단은 공무원 개인의 과실이 아닌 데다 고의가 없어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며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은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