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벽에 도전해 온 정치 인생
‘콘크리트’ 대구에서 절반 수준 득표
여야 모두에 ‘일방독주 안돼’ 메시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 4일 대구 달서구 두류네거리 선거사무소에서 낙선인사를 하고 있다. 대구|권도현 기자
철옹성 같은 대구의 ‘콘크리트’에 금이 갔습니다.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45.05%의 득표율로 선전한 겁니다. 비록 당선은 추경호 국민의힘 당선인(53.92%)에게 내줬지만, ‘접전 자체가 이변’인 대구에서 절반 가까운 득표는 엄청난 일입니다.
견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도전한 김부겸 전 총리. 그가 이번 선거에서 던진 메시지는 ‘견제와 균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양극단화와 독선으로 치닫는 오늘날 한국 정치권이 새겨들을 지점도 많습니다.
콘크리트에 낸 균열
김부겸 전 총리는 1958년 경북 상주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섰고, 1988년 한겨레민주당 소속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4선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등을 지낸 중량급 정치인입니다.
경기 군포시에서 내리 3선을 한 김부겸 전 총리는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지역주의 극복’을 다짐한 경험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고 했습니다. 그해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40.42%의 득표율을 얻으며 선전했어요. 2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해 40.33% 득표율로 석패했습니다.
김부겸 전 총리는 마침내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 62.30%의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제6공화국 이후 대구에서 처음 당선된 민주당계 국회의원입니다. 앞길 탄탄한 정치인이 3선 지역구를 버리고 ‘험지 중의 험지’에 계속 부딪히는 모습이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죠.
특히 이번 선거에서 김부겸 전 총리는 대구 최대 현안인 경기 침체를 ‘고인물 정치’와 연결하며 큰 호응을 얻었어요. 섬유 등 경공업을 주축으로 1960~1970년대 수출경제의 중심이었던 대구는 산업전환에 실패하면서 30여년째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하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구도 꾸준히 줄고 있고요.
김부겸 전 총리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다른 산업으로 넘어가는 게 불가피했는데 제때 준비를 못 했다”며 “지역 유력 정치인들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치인 간 경쟁이 사라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구 민심을 두고는 “그동안의 정치적 선택이 보답받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분노가 있다”며 “정치를 통해 효용감을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김부겸 전 총리는 민주당에도 독선을 경계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한 ‘공소취소 특검법’이 큰 논란이 되자 “그 법, 못 하게 막겠다”며 “민주당을 견제하는 일은 제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일방통행 정치의 위험성을 여야 모두에 경고한 셈입니다. 진영논리에 기대어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쁜 오늘날 정치권이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얼굴의 민주주의
콘크리트에 도전하는 정치인, 김부겸 전 총리뿐만이 아닙니다. 김 전 총리가 대구에서 당선된 2016년 총선 때 전남 순천에서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죠. 직접 발로 뛰며 수많은 유권자를 만난 행보가 좋게 평가받았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오중기 경북도지사 후보(32.75%, 2위)나 이삼걸 경북 안동시장 후보(49.07%, 2위)의 분투가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구혜영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말처럼 “거대 정당이 험지에서 한두 석 나눠 갖는 정도론 정치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양한 민의를 보장할 수 있는 광역의회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등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죠.
이번에 보수정당의 텃밭인 경북 안동에서 3수 끝에 당선된 허승규 녹색당 시의원 당선인의 사례도 주목할 만합니다. 유권자 1만 명인 선거구에서 3000여명의 전화번호를 모을 정도로 열심히 소통하며 일궈 낸 성취입니다. 허 당선인처럼 다양한 정당의 정치인들이 다음 선거에서는 더 많이 선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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