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균은 폐는 물론 온몸에 퍼져 폐결핵, 척추결핵, 결핵성 뇌막염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
결핵을 ‘못 먹고 살던 시대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 상반되게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오른 뒤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1위 자리를 줄곧 유지했습니다. 2022년이 돼서야 OECD 가입 27년 만에 1위 자리를 콜롬비아에 물려주고 2위로 내려온 것이죠. 특히 2020~2024년 5년간 국내 신규 결핵 환자가 여전히 8만명을 웃도는 현실은 결핵이 과거의 질환이 아니라 현재도 주의해야 할 위협적인 감염병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국내 결핵 환자 수와 발생률 모두 과거보다 많이 감소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이나 만성질환 환자는 발병 위험이 커 고령화 시대에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결핵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으로, 폐를 침범하는 폐결핵이 가장 흔합니다. 결핵균은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퍼질 수 있어 림프절, 뇌막, 척추, 복막 등 다양한 장기에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결핵성 뇌막염, 척추결핵 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죠. 단순한 호흡기 질환이 아니라 전신 질환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결핵이 발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감염자의 약 5~10% 정도만 실제 활동성 결핵으로 진행되며, 나머지는 면역체계가 결핵균을 억제하는 잠복결핵 상태로 남습니다. 그러나 잠복 상태라고 해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며, 면역력이 저하되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활동성 결핵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병, 영양결핍, 만성질환, 과도한 음주, 고령 등 면역기능이 떨어지는 조건에서는 결핵 발병 위험이 크게 증가합니다.
박윤선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결핵은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성 질환으로, 치료를 받지 않은 활동성 결핵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공기 중으로 배출된 결핵균이 타인의 호흡기를 통해 흡입되면서 감염이 이뤄진다”면서 “다만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전염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면 약 2주 이내에 전염력은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핵균에 감염돼도 대부분은 잠복한 상태이고, 활동성 결핵으로 진행된 경우라도 증상이 거의 없거나 기침 같은 매우 흔한 증상이라 초기에는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2주 이상 지속되는 기침, 가래나 객혈이 동반되는 경우엔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미열, 야간 발한, 피로감, 식욕부진, 체중 감소와 같은 전신 증상도 함께 나타날 수 있으며, 기관지 결핵은 천식처럼 쌕쌕거리는 천명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을 때 흔한 감기나 기관지염으로 생각하고 방치하기 쉬운데, 진단이 늦어지면 병을 키우고 치료로 어려워집니다.
결핵 진단을 위한 검사는 가래침(객담)에서 결핵균을 직접 확인하는 도말검사와 배양검사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결핵균 유전자 검사를 통해 보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밖에 다양한 영상검사도 폐의 병변과 결핵균의 활동성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결핵의 치료 성공률은 약 98%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치료가 잘 되는데 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결핵의 완전 퇴치가 어려운지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결핵 치료가 성공하는 데 한 가지 단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긴 기간 동안 꾸준히 약물 복용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 말이죠. 폐결핵의 표준 치료는 항결핵제를 최소 6개월 이상 복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렇게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결핵균이 매우 느리게 증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실히 치료에 임하지 않고 임의로 중단하거나 불규칙하게 약을 먹으면 결핵균이 약에 대한 내성을 획득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약제 내성 결핵’으로 진행될 경우 치료기간은 더 길어지고 치료 성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죠.
박 교수는 “충분한 기간 동안 약물을 유지하지 않으면 균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치료 종료 후 재발할 우려가 커진다”며 “실제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기침이나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이 악화하고, 자칫 사망에도 이를 수 있으며 자연 치유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경고합니다.
어느 약이나 그렇듯 항결핵제도 장기간 복용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리팜피신을 복용하면 소변 색이 붉게 변할 수 있으나 이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다만 간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피로감이나 황달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탐부톨은 일부 환자에게 시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으며 피부 발진이나 관절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임의로 약을 중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서 치료제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핵이 과거 어려웠던 시절의 병으로 기억되는 데엔 당시엔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도 훨씬 적었을 뿐 아니라 몸속 면역체계가 결핵균을 억제할 만한 영양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 등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손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죠. 연령이 높아지고 각종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노년층 인구, 특히 주변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1인 가구 노인 등 치료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박 교수는 “결핵은 개인의 질병을 넘어 사회적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며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고 전파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당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