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봉 애니메이션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
총 연출 맡은 허평강 감독 인터뷰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한 장면. 영화특별시SMC 제공
허평강 감독. 영화특별시SMC 제공
“김초엽 작가 작품의 첫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을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시는 관객분들이 새로운 시도도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 3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하<순례자>)는 김초엽 작가의 첫 소셜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한다. 20여 년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해 온 허평강 감독의 첫 한국 장편 연출작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허 감독은 “판권 계약을 마친 뒤 김초엽 작가가 대작가가 돼서 작업에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며 “흔쾌히 각색을 허락해 준 김 작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주인공 소피. 영화특별시SMC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주인공 데이지. 영화특별시SMC 제공
<순례자>는 열여덟 살이 되면 지구로 1년간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야 하는 유토피아에서, 순례를 끝내고도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원작이 데이지가 소피에게 쓴 편지로 전개되는 형식이라면, 영화는 소피와 데이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SF 모험극으로 확장했다. 소피역에는 배우 김향기, 데이지 역에는 배우 박지후가 더빙을 맡았고 가수 황소윤이 음악 감독을 맡았다.
2019년 책이 출간된 직후 허 감독은 제작사 21스튜디오와 애니메이션화에 뛰어들었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각색과 콘티 작업에만 2년, 1만2000장의 작화를 완성하는 데 3년. 50여 쪽 분량의 단편 소설이 6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허 감독은 “당초 30분 분량의 기획이었지만, 인물들의 서사를 풍부하게 담다 보니 60분으로 늘어났다”며 “원작 소설의 시 같은 인상을 풀어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각색을 거치며 사랑이라는 주제 의식도 한층 선명해졌다. 허 감독은 “<순례자>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며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제 의식은 캐릭터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 위현송 디자이너와 협업한 소피와 데이지는 화려한 미형(美形) 대신 수수한 인상으로 완성됐다. 허 감독은 “예쁘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소피의 긴 턱, 데이지 얼굴의 얼룩 등 어딘가 결핍을 가진 존재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20여 년간 쌓아온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허 감독은 2006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매드하우스에 입사했다. 이후 여러 제작사를 거치며 <데스노트>, <명탐정 코난>, <하이큐!! 투 더 탑>,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등 40여 편의 작품에 참여해 연출 경험을 쌓았다.
그가 맡은 첫 작품은 <데스노트>였다. “아라키 테츠로 감독님께서 제 그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숙제로 콘티를 그려오라고 하셨어요. 그 덕분에 굉장히 빠르게 연출 데뷔를 할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고, 여성에다 외국인인 제게 기회를 준 것이 감사하죠.” 어린 시절 동경하던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게 된 그는 자신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부른다.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한 장면. 영화특별시SMC 제공
일본에서의 일이 끊이지 않던 그가 갑작스레 한국에서 작품을 만들게 된 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허 감독은 “이번 제안이 왔을 때 한국에서 오리지널 작품을 할 수 있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순례자>가 잘돼서 다른 작품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실력에 비해 업계가 발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대개 편집권이 없어요.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거죠. 제작하는 작품이 많아야 히트작이 나오는 만큼 한 두 편의 실패에도 후퇴하지 않을만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웹툰이 잘되고 있는 만큼 웹툰 원작 애니메이션이 물꼬를 터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