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 일어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비판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효진 기자
6·3 지방선거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시민 수천명은 7일 개표소로 사용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를 사흘째 이어갔다. 전날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3만여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이곳에는 잠실7동 투표소에서 가져와 개표를 마친 투표함이 있다. 서울 주요 대학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규탄하는 총학생회 등의 성명이 이어졌고, 한국대학 총학생회 공동포럼은 기자회견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난 5일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나 사태가 진정되기보다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민주주의 근간인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한 중대 사건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로 용지를 송부한 투표소가 서울 송파구 15곳을 비롯해 전국 67곳에 달했고, 추가 송부된 용지를 사용한 투표소도 50곳이나 됐다. 그나마도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송파구 등에서는 개표방송이 진행 중인 밤늦게까지 투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높은 사전투표율을 고려해 본투표용지 인쇄 규모를 줄여 생긴 일이라는 게 선관위 설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말문이 막힌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선관위가 진상규명위를 꾸리겠다고 하지만 이미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 설혹 선관위가 사실에 부합하는 조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시민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됐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구의 철저한 조사·수사와 책임자 처벌, 선관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태를 풀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난 며칠간 참정권 침해의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치권의 책임 있는 논의는 없었다. 여야의 직무유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와 선관위 개혁 논의를 국회에 요청했고, 검찰·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조사요구서를 8일 제출하고 국민의힘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개헌·특검 가능성도 열어두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8일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하고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정략적 접근이다. 예컨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구체적인 대상·방법·계획도 제시하지 않고 시위대 요구에 편승해 무작정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를 주장하는 것, 일부 당 지도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이재명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는 건 무책임한 선동이다. 여야는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냉소를 키울 수 있는 엄중한 상황임을 직시하고 국정조사·특검·선관위 개혁을 위한 협상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