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 녹색당 안동시의원 당선인. 허 당선인 페이스북 갈무리
“끝 모를 토건사업, 날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이런 것들은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아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우리의 장벽은 정치입니다.” 녹색당이 풀뿌리 시민의 힘으로 기득권 정치를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등장한 것은 2012년이었다. 생활정치,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등 그간 녹색당이 일궈온 가치는 이제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됐다. 하지만 그 세월이 흐를 동안에도 제도정치의 장벽은 높고 견고했다. 끈기 있는 도전에도 현실의 선거는 좀체 녹색당에 곁을 내주지 않았다.
6·3 지방선거가 ‘터닝 포인트’가 됐다. 경북 안동시의원 마 선거구에서 허승규 후보(37)가 거대 양당의 벽을 넘어 1위로 당선됐다. 안동 토박이인 그가 세 차례 도전한 끝에 결실을 본 것이다.
허 당선인이 지역에 뿌리내리기로 결심한 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16년 전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는데 새벽에 서광이 비치며 지역이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새겨진 게 계기였다고 한다. 졸업 후 안동으로 돌아와 지역활동을 시작했고, 시의원 선거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2018년, 2022년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보수세가 강한 안동에서 진보적 소수정당 소속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사람은 괜찮은데 당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후보자 성씨가 선거에서 변수가 되는 안동의 ‘문중 정치’ 관행도 걸림돌이었다.
그가 장벽을 허물 수 있었던 건 지역주민 삶에 밀착한 덕분이었다. 휴대전화 속 유권자 전화번호가 전체 유권자 4분의 1가량일 정도로 바닥을 다졌다. 지역민 생활의 가려운 곳을 긁는 의제를 꾸준히 발굴한 것도 마음을 움직였다. 2020년부터 ‘버스 타기 좋은 안동’ 활동으로 이동권을 의제화했고, 지난해 3월 대형산불 땐 피해 주민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런 노력 덕에 녹색 가치는 그곳에서 낯선 게 아닌 보편적 삶의 가치로 이해될 수 있었다.
녹색정치가 제도정치에 첫 뿌리를 내린 데서 희망을 본다. 성장과 개발 중독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아닌가. 풀뿌리 의회의 녹색 청년 정치인을 시작으로 더 이상 제도정치가 다양한 가치들의 장벽이 되지 않는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