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가 세계 문화시장에서 핵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위상이나 숱한 예찬 담론과 달리 국내 콘텐츠 산업의 투자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산업구조도 해외 플랫폼 종속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외국계 플랫폼들이 밭떼기하듯 ‘권리 일괄구매 계약’을 일삼으면서 국내 제작사들은 작품이 흥행해도 더는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문제의 핵심은 K콘텐츠가 장기 현금흐름과 지식재산권(IP)을 창출하는 유망 자산인데도 문화와 금융이 따로여서 장기간 ‘투자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과 단기·소액 지원 중심의 현행 정책만으론 한계가 분명하기에 민간과 국외 자본을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의 토대 위에 제작시장으로 유입시키는 ‘문화금융’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올해 문화예산 중 콘텐츠 진흥 부문은 연간 1조6000억원, 콘텐츠 정책 펀드는 1조원 수준이다. 정부가 제시한 ‘K컬처 시장 300조원, 수출 50조원’이란 목표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면 국내 시중 유동성은 4000조원대에 이르고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다. 그간 민간투자의 걸림돌은 콘텐츠 산업이 고위험 투자처란 인식과 불안정한 회수 구조였다.
결국 문화금융으로 풍부한 대기자금을 유입하려면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의 역할을 분리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확보하는 문화펀드를 설계해야 한다. K반도체와 K바이오산업은 미래 수익성을 소구해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였다. K콘텐츠 역시 금융 구조를 정교화하면 성장의 날개를 달 수 있다.
구체적으로 펀드는 제작사·방송사·엔터사·플랫폼 등 SI가 전체 투자액의 일부를 맡고, 나머지는 개인·기관·외국인 투자자 등 FI에 개방하도록 설계한다. 첫째, 안정성 강화를 위해 FI에는 앞 순위 배당과 조기정산 혜택을, SI에는 IP 확보를 전제로 뒤 순위 배당과 우선 손실 충당을 각각 부여한다. 정책금융기관은 선택적으로 SI 출자에 참여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보강한다. 콘텐츠 투자 위험을 분산하면서 IP 확보도 가능한 구조다.
둘째, 수익성 강화를 위해서는 하나의 펀드에 영화·드라마·음악·게임 등 다양한 유망 콘텐츠 제작 계획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투자심사 역시 내부 평가 위주에서 벗어나 글로벌 트렌드, 시장성, 플랫폼 수요, 이용자 반응 등을 반영한 ‘흥행예측지수’ 산정 방식으로 혁신해야 한다.
문화금융이 정착하면 투자-회수-재투자의 선순환으로 K컬처의 건실화와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창작자와 제작자는 제도 활용을 위해 히트작 개발 경쟁을 벌이는 한편 자금 조달이 더 수월해져 다작을 준비할 수 있다. 토종 OTT, FAST(광고를 보는 대신 무료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TV 서비스), 방송사 등은 콘텐츠 공급망 강화란 성장의 단짝을 만난다.
펀드 수익 일부를 기초예술과 중소·독립 창작자에 지원하면 문화예술 저변도 넓어진다. 문화펀드 등 문화특화 투자를 총괄 관리할 전문기관도 필요하기에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정책보험금융원처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정책금융원’(가칭) 설립을 검토할 만하다. K컬처도 이제 전략산업답게 ‘문화금융 시대’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글로벌K-컬처경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