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 알게 된 기독교의 기도 방식 중에 ‘화살기도’라는 것이 있다. “암 환자인 ○○을 위해 모월 모일 모시 화살기도를 해주세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사람들이 기도를 해주는 식이었다. 신도 화살기도도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라면, 그것은 한 지점을 향해 수많은 빛살이 꽂히는 모양일 것이다. 확고한 무신론자에게는 이 의식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는다. 그 빛살이 고통받는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거라고.
특정 종교의 신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즐겨 듣는 염불 메들리도 있고, 석가탄신일이면 연등을 달아보기도 했다. 십자가나 성모상 앞에 서면 두 손을 모아보기도 한다. 점을 보러 간 일도 있다. 사도세자를 모신다는 그에게 정작 사도세자는 3분도 채 머물지 않았던 것 같다. 대운이 트인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진단을 받았다. 엉터리 사주와 점괘의 결과는 웃긴 일화로 남았을 뿐이다.
내가 성당에 다니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병을 얻고 나서도 신을 믿지 않는 나를 조금 황당해했다. 질병은 많은 경우 종교적인 세계관 속에서 재앙이나 징벌이라는 의미망에 속해 있다. 막상 당신이 낳아 기른 딸이 아프게 되자 죄인이고 징벌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했지만, 두려운 상황에서도 신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는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우스개를 섞어 뻗대는 것으로 이런 상황을 넘겨왔다.
“절에 가서도 빌고 성당 가서도 빌고 하면 안 돼? 급한데 이것저것 가릴 게 뭐가 있어. 일단 다 가서 살려달라고 소원 접수를 해놓으면 누구 하나는 들어주지 않을까?”
용케 삶을 되찾은 뒤에도 여전히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종교에 특별한 적대감이나 위화감은 없는 채로, 또 그것의 효용을 인정하는 채로, 다만 신의 존재를 느끼고 또 그것을 믿는 일만은 아무래도 잘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 대신 나는 기도의 힘을 믿게 되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기도는 믿는다니, 모순적인 말 같지만 그렇다. 끝 모를 절망과 공포에 맞서는, 무력하고 유한한 몸을 지닌 인간의 간곡한 마음을 믿는다.
어머니가 다니는 성당의 수녀님들과 신도들은 아픈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내 친구들도, 친구의 친구도, 심지어 SNS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매일 하는 기도의 목록에 나를 끼워주었다. 어떤 이가 매일 SNS에 올리는 기도문 속에는 핍박받고 저항하는 이름들, 세상을 떠났거나 아픈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다. 어느 날 나도 그의 기도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묵주도 하나 선물받았다. 어느 신부의 축복을 받아온 성물이었다. 나는 그 신부가 제공한다는 각종 암 치유 요법의 효능도, 종교의 은총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60대 여성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교통도 수월치 않아 수차례 버스를 갈아타며 그곳을 찾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의 생명에 신이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생명에는 그이들의 간절하고 신실한 믿음의 지분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실한 보수 개신교 신자로, 극우 성향의 목사를 따랐던 친척과 그 주변의 개신교인들도 나를 위해 기도했다. 광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 정죄하던 입술들이, 나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누군가를 멸하려는 말과 누군가를 살리려는 기도가 한 몸에 깃들어 있는 모순.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이상하거나 적어도 모자란 사람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생명이 위독하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들의 눈앞에 끼어 있던 색유리가 잠시 걷힌 듯했다.
아픈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쏟아지는 믿음들의 한가운데 놓이는 일이었다. 모두가 무조건적인 측은지심을 발휘했고 사랑을 다해 기도했다. 아픈 사람의 역할이란 아마도 이 제각각의 선의를 거절하지 않고 받는 일일 것이다. 따사롭고 무해해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그 뒤편의 어긋난 풍경을 끝까지 응시하는 채로.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