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정부는 ‘2026년 수급 불안정 의약품 생산 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6개 기업, 7개 의약품 품목을 선정했다. 공급이 원활치 않은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시설·장비 구축을 지원해 생산을 재개하거나 생산량을 늘리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번에 선정된 의약품에는 알레르기 질환과 결핵 치료제, 항생제, 수술 전 진정이나 급성 간질 치료, 급성 부신부전증 치료에 쓰이는 응급 의약품, 임신성 당뇨 검사액 등이 포함되었다. 모두 제네릭 의약품이다.
보건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의약품 ‘접근성’에 대한 우려는 다른 쪽에 집중됐다. 예컨대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 때문에 저소득국가나 고소득국가의 가난한 HIV/AIDS 환자들이 안정적 치료를 받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해열제 대란’ 같은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타이레놀’이라는 상품명으로 익숙한 해열진통제부터 어린이 천식과 감기약, 인슐린 제제에 이르기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필수의약품의 수급 불안정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2025년 박승희 의원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최근 6년간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부족 보고 건수가 147건에 달한다. 최근의 정부 대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발표된 것이다.
단순 해열제·감기약·인슐린제 등
잇단 제네릭 필수 의약품의 부족
공급 난립 상황 속 약 부족 ‘기형적’
시장 맡긴 약 공급, 국가가 나서야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까? 일각에서는 한국의 건강보험이 약가를 지나치게 낮게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것만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없고 가장 시장주의적 의료체계를 가진 미국에서는 왜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2017~2021년 미국에서는 113종의 의약품이 6개월 동안 33% 이상 공급이 감소하는 문제가 일어났고, 이 중 대다수는 제네릭 의약품이었다. 2023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분기당 301개 의약품 부족 이슈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적으로 제네릭 의약품의 수급 불안정은 독특한 시장 구조에서 비롯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수많은 공급자, 동질적 제품, 한계비용을 향한 가격 조정이 존재하는 완벽한 경쟁 상태를 가정한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 새로운 공급자들이 시장으로 진입하거나 소비자들이 수요를 줄임으로써 새로운 균형점을 찾게 된다. 의약품 시장의 경우, 특허 만료와 함께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가능해지면 초기 시장 진입자들 사이에 치열한 가격경쟁이 일어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가격 인하를 버티지 못하는 공급자들이 시장에서 이탈하는 균형점에 이르는 것까지는 일반 시장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소수 공급자에게 생산이 집중된 상황에서 갑자기 제조 과정의 품질 관리,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전국적 수급 불안정이 일어난다. 다른 소비제품이라면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신속하게 생산설비를 늘리거나 경쟁기업이 진입하겠지만, 의약품 생산은 품질보장을 위한 시설, 공정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단시간에 반응하기 어렵다. 또한 의약품 가격을 올려서 수요를 줄이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인슐린 제제가 부족하니 가격을 올려서 돈 있는 당뇨병 환자만 치료받게 한다? 문명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대안이다.
국내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수급 불안정 의약품이라는데 동일 성분, 심지어 동일한 제형과 투약 경로를 갖는 제품이 다수의 제약사에서 생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타이레놀’ 공급 불안정 소식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해하던 시기에 국내 130여개 제약사에서 타이레놀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을 330종 이상 생산하고 있었다. 공급자 난립과 수급 불안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상황이 공존하는 셈이다. 이는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관리 실패다.
세계 각국은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여러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 의존만 하지 말고 필수의약품 제조와 공급에 국가가 직접 나서는 것도 그중 하나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에서조차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통해 비영리 제약사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약가 인상과 시설·장비 지원을 하면서 민간 제약사를 보조하는 역할에만 머무르고 있다.
의약품 공급이든 병의원 확충이든, 공공보건의료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민간’이, ‘시장’이 있는데 국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시장 맹신’이 아닐까 싶다.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보건안보’ 문제이면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기본의료’를 뒷받침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정부는 민간 제약사들의 결정을 그저 따르고 지원하는 서포터 역할에서 벗어나, 전략적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 필수의약품 공급자로서의 역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