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등 미디어의 디지털화는 민주적 여론 형성에 필요한 다양성과 참여를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과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에코 체임버’(반향실)에 갇히기 시작했다. 정치적 극화가 일어나고, 반대 의견을 포함한 검토와 토론이 아닌 편견과 혐오가 증폭된다. 숙의의 바탕인 질 높은 정보는 줄고 허위·조작 정보와 선동이 확산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걱정만 많을 뿐 무기력하다. 중간상인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이 ‘사상의 공개 시장’을 통제한다고? 머릿속에 깊이 박혀 공유된 언론자유의 가치가 개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미디어에 대한 국가 개입은 미디어의 특성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에 의해 결정돼왔다. 신문은 서구의 18~19세기 자유주의 시대에 성장하며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자유로운 핵심 매체로 자리 잡았다. 반면, 1920년대 등장한 라디오 방송은 전신·전화와 같은 통신 서비스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면서 통신 분야의 면허와 감독 체계 아래 놓였다.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가 방송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적 책임을 부과할 수 없다는 생각은 기술적 특성이 제도의 형태를 정한다고 보는 기술결정론적 착각이다.
1940년대 미국의 신문도 사업 집중과 선정주의, 여론 왜곡 문제에 직면했다. 디지털 플랫폼이 민주적 숙의의 기반을 흔드는 현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적 전문가 기구인 ‘허친스 위원회’가 구성됐다. “언론자유는 사회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원칙은 이 위원회가 1947년 발표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2024년에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하며 디지털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법제화했다. DSA는 플랫폼 스스로가 알고리즘, 광고 시스템, 정보 유통 방식이 초래하는 사회적 위험을 평가하고 완화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플랫폼에 공적 책임을 부여하려는 시도로서, 디지털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구현에 관한 세계적 준거가 되고 있다. 시대와 대상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다. “민주주의 사회는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에 어떤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가?”이다.
지난 3월 작고한 사회 소통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도 2022년 사실상 그의 마지막 논문에서 디지털 미디어 문제를 다뤘다.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상 새로운 미디어 역시 전통 언론과 유사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건강한 공론장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 시스템을 지키는 일은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적 명령”이라고까지 강조했다.
한국에서 이 문제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섣부른 규제는 혼란과 저항만 낳기 마련이다. 이해당사자인 정권이 쉽사리 손을 대서는 안 되고 한 정권 내에서 해결할 수도 없다. 새로운 현상에 대한 각가지 생각을 포괄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함께 모색해보자! 이를 위해 허친스 위원회처럼 범사회적인 논의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가칭 ‘디지털 공론장과 민주주의 위원회’가 새로운 원칙을 만들고, 가능하다면 정책적 방향성까지 제시하면 금상첨화겠다.
강형철 경향신문 독자위원장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