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오른쪽)이 2007년 경향신문사에서 정상현 이화여대 교수와 의료법 개정안을 주제로 한 찬반 대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의료 접근 쉽지 않은 환자들 돌봐…높은 임대료에 작년 폐업
공공의료 병상 확충 요구 등 보건의료·노동 운동 이끈 ‘거목’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대표적 활동가인 우석균 전 성수의원 원장이 투병 끝에 7일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24년간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진료하며, 의료 민영화 저지와 노동자 건강권 운동에 앞장섰다. 향년 64세.
고인은 2001년부터 성수동 성수의원을 운영하며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장애아동과 가족, 노인, 성소수자 등 의료 접근이 쉽지 않은 환자들을 돌봤다. 그가 지킨 성수의원은 1988년 노동자 건강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의사들이 세운 의원으로, 지역 노동자와 가난한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고인은 성수의원을 단순한 동네의원이 아닌 환자의 생활, 가족, 차별 경험까지 함께 살피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노인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처방을 꼼꼼히 살폈고,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는 눈높이에 맞춰 여러 차례 설명하며 진료했다. 그는 말기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진료를 이어갔지만 건강이 나빠지며 휴식에 들어갔고, 성수의원도 지난해 8월 임대료 상승 등이 겹치며 문을 닫았다. 환자들은 그런 고인을 “환자의 삶에 진짜 관심이 있는 의사”로 기억했다.
고인의 활동은 진료실 밖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의사를 넘어 한국 보건의료·노동 운동을 이끌어 온 거목이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등 중책을 역임하며, 의료 민영화 저지와 영리병원 도입 반대 등 굵직한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의료 분야의 공공성 훼손을 경고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감염병 재난이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는 점을 짚으며 공공의료 병상과 인력 확충을 요구했다. ‘건강은 시장의 상품이 아닌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라는 그의 철학은 시민사회 보건의료운동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현장에서 길어올린 문제의식은 연구와 저술로도 이어졌다. 고인은 공중보건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며 의료 문제를 사회구조 문제로 읽어내는 데 힘썼고,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운영위원과 ‘의료와 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의료붕괴> <거꾸로 생각해 봐!> 등의 책을 공동 집필했다. 지난해에는 그가 건강권과 보건의료 관련 쟁점을 두고 써 온 글을 한데 묶은 저작선 <이윤보다 생명을>이 출간됐다.
지인들은 그를 “폭설에도 늘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 같았고, 꽃샘추위에도 매화 향기를 잃지 않았던 소중한 친구이자 동지”로 기억하며 안식을 기원했다.
고인의 장례는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엄수된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추모식은 8일 오후 8시 장례식장 1층 행사장에서 열린다. 발인은 9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