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들이 3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7일로 100일이 됐다. 전쟁은 이란 핵 프로그램 제거를 목표로 시작됐으나 이란이 오히려 새로운 협상 카드를 손에 넣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카드는 폭 34㎞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다. 이란이 해협을 장악하면서 세계 경제는 충격에 빠졌고 해협 봉쇄는 종전 협상을 가로막는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과거부터 서방에 보복하기 위한 이란의 선택지로 거론됐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정규 해군이 없는 이란이 기뢰, 무인기(드론), 고속정 등을 활용해 해협을 장악한 것도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글로벌 정치 리스크 자문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선임 분석가인 그레고리 브루는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막대한 공습에도 불구하고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CNN에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국제 유가가 급상승하는 등 전 세계 경제에 충격이 확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난해 성장률 3.4%보다 0.6%포인트 낮은 수준인 2.8%로 전망했다. OECD는 이 같은 추정치를 내놓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운송 차질과 에너지 인프라 피해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초래됐다”며 “비용 증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가계 소비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협 봉쇄의 여파는 에너지 시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비닐봉지와 질소 비료 등의 수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요한 헬륨도 공급 부족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3월 중동 분쟁에 따른 종량제봉투 품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일본 과자업체 가루비(Calbee)는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감자칩 등 일부 제품을 흑백 포장지로 출시하기로 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해협 봉쇄는 이란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이번 분쟁에서 해협 통제 능력을 입증한 이란은 향후 이를 새로운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핵 프로그램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추가적인 억지력을 확보한 셈이다. 이란은 지난 4월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신설해 해협 통제의 제도화에도 나섰다.
미 국무부 관리였던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은 이제 핵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하다”며 “이란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 때문”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원유 공급 등이 즉시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란이 협정 체결 이후 해협 개방에 동의하더라도 통제권을 주장하며 위협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박 통행량의 원상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폭격으로 파괴된 에너지 시설, 해협 기뢰 제거 등에도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석유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1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오스트리아 빈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공급 차질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로는 중동 원유 의존 구조의 한계를 체감한 국가들이 걸프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중남미 등 다른 산유 지역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