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농어촌 기본소득을 매월 15만원씩 받고 있다. 우리집 가구 수가 3명이니 한 달에 45만원, 1년이면 540만원으로 적지 않은 액수이다. 덕분에 물가가 많이 뛰었는데도 가끔 배달음식도 먹고 로컬푸드 매장에서 식재료도 넉넉하게 산다. 처음에는 매월 다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잔액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지역의 연구활동가들이 만든 연구팀에 참여하게 되어 2월부터 4월까지 지역화폐로 지출된 기본소득 내역을 살펴봤다.
3개월 동안 약 204억원이 지급되었는데, 총사용액은 약 177억원(86.9%)이었다. 읍과 상권이 형성된 면에서는 사용률이 높았지만, 상권이 없는 면 주민들의 사용률이 읍보다 13.4% 낮았다. 그래도 농어촌 기본소득을 쓸 수 있는 가맹점은 기존의 2510곳에서 146곳이 늘어나 2656곳이 됐다.
주민들은 어디에 돈을 썼을까? 가장 많이 지출된 곳은 식품 업종으로 약 66억원(37.2%)이 사용되었고, 그다음이 소매업(13.9%), 주유소나 충전소(8.4%), 약국(6.9%), 병원(5.6%) 순이었다. 읍과 면이 차이를 보이는 업종은 농협 하나로마트, 학원, 미용 등으로, 쓸 곳이 마땅치 않은 면의 주민들은 월 5만원으로 사용이 제한되는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한도를 채워 썼다. 반면에 면에 없는 학원과 미용 업종에서 면 주민들의 사용률은 1%를 넘지 못했다. 인구가 적은 면에 약국이나 병원, 학원 등이 새로 생기기 어렵기에 지역화폐로 지급받은 돈을 쓸 곳이 더 다양해질 필요는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효과
고작 6개월이 지났으니 아직 그 흐름을 더 지켜봐야 할 텐데, 농어촌 기본소득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밥 먹고 물건 사는 데 돈을 다 쓴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역의 사업체 수 통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 ‘도매 및 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이다. 이곳에 지출된 돈은 고물가에도 지역경기를 살리는 데 분명 효과적이다.
그리고 밥을 먹는 건 관계에 기반한 문화활동이다. 최근 식당에서 가족식사나 단체식사를 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1인 가구가 식생활이 나빠질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더구나 고향에 온 자식이나 친구들에게 밥이나 차를 살 수 있는 여유는 자존감을 높인다. 공동체 형성 이전에 기본적인 관계가 탄탄해야 하는데, 기본소득은 코로나19나 고물가로 서먹해졌던 관계들에 조금씩 활력을 주고 있다.
확실히 면 지역에서 생활을 스스로 개선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상점이나 구판장, 장터를 여는 사례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어쩔 수 없었던 불편이 개선될 수 있는 단점으로 여겨지게 된 건 중요한 효과이다. 그렇지만 이런 개선들이 민간의 노력으로만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가 선한 마음으로 상점이나 장터를 열어도 점점 더 다양해지는 주민들의 요구와 늘어나는 운영비용을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편으론 불편함을 감수해야 경제가 순환된다는 대통령의 말을 이해하지만 누군가는 뒷짐 지고 쳐다보기만 하는 행정을 움직일 책임을 져야 한다. 장관이나 중앙행정부처 공무원들이 한 번씩 들르는 것으론 지자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 창업하는 숫자를 세지 말고 이미 있는 공간에 복합적인 기능을 덧붙이고 이를 유지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농정의 흐름이 바뀔까?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인구가 2819명이나 되니 농어촌 기본소득 실시가 가장 효과적인 인구유입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20·30대 전입자도 926명이나 되어서 고령자만이 아니라 청년들의 관심도 끌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어떤 인구유입 정책보다 효과가 좋았다.
농어촌 기본소득 실시로 지자체 재정이 큰 타격을 받았을까? 광역과 기초지자체의 전체 예산과 농업예산을 검토하니 일정 정도 조정이 필요했지만 운용에 지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떤 점에서는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만 유리하고 대다수 주민에게 이득을 주지 못했던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 사업들이 재검토될 기회이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자원이 생겼다. 주민들이 움직이는 만큼 행정이 움직이면 농정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