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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의 그늘 지켜낸 양버즘나무

입력 2026.06.08 19:55

인천 송학동 양버즘나무

인천 송학동 양버즘나무

도시의 가로수 가운데 흔하게 마주치는 나무는 양버즘나무다. 플라타너스로 더 많이 불리는 양버즘나무는 그늘을 넓게 펼칠 뿐 아니라 잎 표면의 미세한 솜털이 미세먼지와 매연, 공해 물질을 흡착해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도 뛰어나 가로수로는 더없이 좋다.

세계 곳곳에서 이 나무를 가로수로 널리 심는 이유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에서도 가로수로 플라타너스 종류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로 도시 풍광에 제격이다.

인천 송학동 ‘자유공원’ 언덕의 양버즘나무는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심은 양버즘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나무 높이 30.5m, 가슴높이 줄기둘레 4.7m에 이르는 이 나무는 2015년 보호수 지정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의 감정 결과, 1884년 무렵에 심은 것으로 추정됐다.

인천 송학동 양버즘나무가 뿌리내리고 살아온 응봉산 자락은 개항장 제물포의 역사를 간직한 인문학적 공간이다. 1883년 개항 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언덕에 집을 짓고, 주변에는 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이름이 각국공원에서 만국공원,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이 나무가 서 있는 언덕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곳이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으로 이어지는 13도 대표자 대회가 열렸던 공간이기도 하다. 포화가 가득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무는 살아남아 전쟁의 상흔까지 품었다.

인천 송학동 양버즘나무 주변에는 제임스 존스턴 별장과 각국 영사관 등의 조경수로 심어진 양버즘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 지나며 모두가 스러지고, 이 한 그루의 양버즘나무만 원형을 잃지 않은 채 근사하게 살아남았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도시의 기억을 저장하는 역사적 실체다. 인천 송학동 양버즘나무 앞에 서서 긴 호흡을 추스르는 건, 개항의 파도와 전쟁의 불길을 지나 끝내 잎을 펼친 한 생명의 안간힘과 마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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