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민주진영이 한창 2030 보수화를 탓하던 중이었다. 합리화와 책임 전가가 범벅된 지겨운 세대론 너머로, 그 담론으로 결코 이해되지 않는 당혹스러운 현상이 출현했다. 참정권과 재선거를 외치는 청년들이 불쑥 등장한 것이다. 물론 잠실 집회가 세대론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청년 전체를 대변하지도, 청년만 참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뒤죽박죽이다. 합의된 거라곤 재선거 구호, 애국가, 태극기가 전부다. 극우에서 무당파까지 광범위한 시민이 뒤섞인 채 이름도 결속력도 갖지 못한 무정형의 집단이다.
집회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예단할 수 없으나, 분명한 건 그들 다수가 양당제가 민의를 대의하는 방식에서 비켜난 이들이라는 점이다. 개혁신당을 향한 싸늘함에서 보듯 양당만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진영논리에 갇힌 유튜브 채널이나 레거시 미디어 역시 그들이 분노를 모아내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치와 미디어가 의사를 조직하고 동원하는 방식으로는 잡히지 않는, 소문과 감정이 퍼지는 경로로서 SNS가 전부였다.
일부 집회 참가자는 투표용지 부족이 “계엄보다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12·3 내란의 맥락적 의미를 모른다는 걸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123일의 내란 탄핵 정국을 자신의 문제로 살아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12·3 내란은 한밤중의 해프닝으로 끝난 단막극이었다. 다음날 평소처럼 일상을 반복했다. 그렇게 정치와 거리를 두었기에 공유되는 맥락적 지식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란을 공통 경험으로 겪지 않았다고 극우인 것은 아니다. 극우세력이 한국 사회의 근본 규범을 전복하려던 것에 반해, 잠실 집회는 그 규범을 지키려고 한다. 정치와 거리가 먼 SNS 계정들이 집회 소식을 공유하고 대학 총학생회가 발 빠르게 성명서를 쓴 데에는 이 사태가 한국 사회의 ‘공통감각’을 건드린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집회 참여자들은 “좌우를 떠나” 민주주의와 참정권의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실 집회는 12·3 내란을 비켜간 이들이 극우가 아닌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들은 부정선거가 아닌 ‘재선거’를 구호로 걸고, 동원된 집회처럼 보이지 않고자 자발성과 순수성을 내세우며, 쓰레기를 줍고 평화를 강조한다. 적어도 거기에는 제3자의 시선을 신경 쓰는 자의식이 작동하고 있다. 자신들이 주목받는 공적 무대에 올랐다는 의식 말이다. 혐오와 폭력을 통한 자아도취로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극우와는 다르다. 무대에 오른 이상 혐오표현과 거친 언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직선거법상 즉각 재선거는 불가능하고, 선거소송이 이뤄진다면 법원의 판단까지 시일이 소모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본래 그런 것이다. 무대에 올라 공적 의사표현을 한 순간부터 민주주의의 절차 아래 놓이게 된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없더라도, 이미 시작한 이상 룰을 따르며 기다리고 타협하는 시민의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의 책임이 있다. 집회에 편승하려는 얕은수는 탄로 나기 마련이다. ‘첫 시민의 순간’을 맞이한 이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며,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가 요청된다. 민주주의의 경험은 극우를 고립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최성용 사회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