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비만약 ‘성지’로 알려진 서울 종로5가 인근 약국 밀집 지역을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올해 들어 넉 달간 세관에 적발된 해외 비만약 불법 반입 건수가 지난해 전체 적발 건수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운자로 등 비만약의 국내외 약값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면서 저렴한 약을 구하려는 ‘원정’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2건에 불과하던 관세청 비만치료제 통관 보류 건수가 2025년 1188건, 올해는 1~4월에만 2245건으로 증가했다. 세관에서 매일 해외 비만약 반입을 19건씩 적발한 셈이다.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비만치료제 통관보류 건수는 6800여건에 달해 지난해 전체 건수의 6배 수준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 마운자로 등을 ‘유해 통보’ 품목에 포함한 이후 해외에서 입국하는 개인들이 이런 약을 들여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반입을 시도하다 통관 보류 처분을 받는 건수가 급증한 배경에는 국내외 비만치료제 가격 차이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에는 “한·일 간 마운자로 약값이 3~4배 넘게 차이 난다” “일본에 가서 약만 사와도 비행깃값 뽑는다” 등의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똑같은 비만치료제를 어디서 구매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다 보니 온라인상에는 국내 구매 마운자로를 ‘김치자로’, 일본 구매약을 ‘일본자로’, 인도 직구품을 ‘인도자로’라고 부르는 등 은어까지 생겼다.
실제로 경향신문이 입수한 국내 의료기관의 비만약 구입 단가에 따르면, 마운자로 4주분 단가는 2.5㎎ 27만8066원, 5㎎ 36만9307원, 7.5㎎ 52만1377원, 10㎎ 52만1377원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마운자로 약가를 0.5㎖ 1키트 단위로 고시하고 있는데, 이를 국내와 같은 4주분으로 환산하면 2.5㎎ 약 7만4000원, 5㎎ 약 14만7000원, 7.5㎎ 약 22만1000원, 10㎎ 약 29만4000원 수준이다. 중간도매상 마진 10%를 제외해도 일본보다 한국에서 약 1.6~3.4배 비싸다.
‘불법’이라는데 ‘반입 후기’?
국내외 가격 차이로 인해 비만약에 대한 해외 구매 유인은 커지지만, 마운자로 등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 현행법상 엄연히 ‘불법’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 의약품의 국내 통관 규제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일반 의약품’인 경우로 본인 사용에 한해 총 6병 또는 3개월 복용량까지 반입을 허용한다. 2단계는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된 경우로 국내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만 통관 가능하다. 가장 강력한 3단계는 식약처장이 수입을 불허하거나 ‘유해 통보’한 품목으로, 자가 사용을 포함해 통관이 전면 금지된다. 오직 식약처에서 품목 수입업자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반입할 수 있다.
식약처는 2024년 10월 위고비·마운자로·삭센다 등 제품명을 특정해 관세청에 ‘유해 의약품’ 통보를 했다. 법적 근거는 약사법상 ‘수입’ 규정이다. 의약품 수입은 품목허가를 받고 수입자로 신고한 자에게만 허용되는 만큼, 자기가 쓸 목적으로 해외에서 사 오는 것도 ‘불법 수입’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식약처 관계자는 “해외에서 개인이 들여오는 제품은 진품 여부와 품질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특정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인터넷 카페 갈무리
그러나 ‘전면 차단’이라는 정부 설명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직구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의사 처방전이 있으면 가능하다” “자가치료용 수입요건 확인 면제를 받으면 된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함께 떠돈다. 빗장이 잠겼다는데, 대체 어떻게 약이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단속 구조에 있다. 식약처가 내세운 약사법은 자가사용 목적으로 해외 의약품을 들여오는 행위를 ‘불법’으로 보지만, 정작 이를 제재할 처벌 조항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속은 관세청에 사실상 의존하고 있다. “마운자로 반입 기준 등 여행자 휴대반입과 관련한 업무에 대해서는 관세청에 문의하라”는 것이 식약처 공식 입장이다.
공을 넘겨받은 관세청이 밀려드는 반입 시도를 모두 걸러내기엔 역부족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식약처가 이런 식으로 통관 차단을 요청한 품목이 8000여건이 넘는다. 관세청 관계자는 “품명이나 성분명이 확인되면 당연히 통관 보류를 하지만, 모든 여행자와 화물을 100% 검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적발되더라도 처분 수위가 고의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역시 반입 시도를 부추긴다. 관세법상 신고 없이 물품을 수입하거나, 실제 수입 물품과 다른 물품으로 신고해 들여오는 경우 밀수입죄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자가사용 목적을 주장하며 소량을 들여오다 적발된 경우까지 전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의성, 수량, 반입 경위 등에 따라 벌금 성격의 통고처분을 받거나 통관 보류 뒤 폐기 처분될 수 있다. ‘통과하면 수십만원을 아끼고, 걸려도 약만 잃으면 그만’이라는 도박 심리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결국 ‘어떻게 막을 것인가’보다 ‘왜 국내에도 있는 치료제를 해외에서 찾는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3배 비싼 ‘김치자로’…제조사는 “가격 인하 계획 없다”
마운자로 제조사인 한국 릴리 측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판매되는 치료제는 완전히 같은 제품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최대 3배 차이가 난다. 일본은 마운자로 등 비만약이 공적 건강보험 내에서 가격 통제를 받지만,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당국이 약가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약사가 한국 시장 공급가를 얼마로 책정하든 비급여는 통제 밖”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을 통제할 수 없다면 비교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제약사에서 비급여 의약품 공급 내역까지 제출받고 있지만, 공급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상 비공개 대상이라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격 통제도 비교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가 사용 목적 수입 길마저 봉쇄되다 보니 제약사 입장에서 한국은 가격 인하 압박이 없는 완벽한 ‘포획시장’이 된다.
한국 릴리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가별 가격은 각국 보험 제도와 시장 상황, 유통 구조 등을 종합해 결정돼 단순 비교가 어렵다”며 “정확한 한국 시장 공급가가 얼마인지는 (본사가 아닌) 우리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공급가가 얼마인지 모른다면서도 이들은 “한국 시장에서 가격 인하 계획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대로면 소비자는 비싼 국내 가격을 받아들이거나, 불법 반입 위험을 감수하고 해외 구매에 나서는 선택지 사이에 놓인다. 가격은 통제하지 못하고 공급가도 공개하지 못한 채 더 싼 약을 찾는 시도만 막는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원정’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 똑같은 약이 왜 한국에서만 비싸게 팔리는지 따져볼 수 있게 의약품 가격 형성 과정을 들여다볼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