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10년간 청소년 자살 사망자가 45% 넘게 증가하면서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온라인 환경 등 청소년 성장환경 전반을 아우르는 범정부 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기 징후 발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살 시도 학생 정보를 교육청과 공유해 2035년까지 청소년 자살률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교원단체 등은 입시 경쟁 완화를 비롯해 근본 처방이 빠진 ‘보여주기식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교육부는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행정안전부·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9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9대 분야별 자살예방 대책’ 가운데 첫 번째로 마련된 것이다.
정부는 인구 10만명당 청소년 자살률을 2024년 8명에서 2030년 6.5명, 2035년 4.2명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396명(잠정)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16년(273명) 이후 9년 만에 45.1% 증가한 수치로, 전년과 비교해서도 6.5% 늘었다. 교육부가 집계한 지난해 초·중·고교 학생 자살 사망자도 243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은 청소년도 2021년 27만4000명에서 지난해 43만1000명으로 늘었다. 정부가 분석한 자살 동기를 보면 ‘정신과적·정신적 문제’가 55.6%로 가장 많았고, ‘관계 문제(가정·남녀)’가 13.2%를 차지했다.
10대 청소년 자살 사망자 수 추이 및 자살률 감소 목표. 교육부 제공
정부는 이번 대책을 예방, 감지, 개입, 회복, 기반 조성 등 5개 전략 아래 15개 세부 과제로 구성했다. 특히 기존 학교·교육청 중심의 대응 체계를 넘어 SNS 환경 개선, 부모 교육, 청소년 전용 병동 도입 등 청소년 성장 환경 전반으로 대응 범위를 확대했다.
예방 측면에서는 우선 학교 교육이 확대된다. 현재 범교과 6차시로 운영되는 사회정서교육을 17차시까지 늘린다. 자아존중감 형성과 감정 조절, 관계 형성 능력, 스트레스 관리 역량 등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다.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도 지원한다. 정부는 부모수당, 아동수당, 한부모가정 아동양육비 등을 받는 보호자에게 성장 단계별 양육 정보와 부모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자살 위기 청소년에 대한 감지·관리도 강화된다. 올해 말까지 AI를 활용한 위기 징후 발굴 시스템이 구축된다. 현재는 상담사가 온라인상에서 가출, 학교폭력 등 140여개의 키워드를 직접 검색해 위기 사례를 발굴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AI가 이미지와 영상, 신종 은어 등까지 포함해 24시간 위험 게시물을 자동 탐지하게 된다. 또 학교 차원의 관리 체계 강화를 위해, 소방·경찰이 확보한 학생 자살 시도자 정보를 시·도 교육청과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상담·치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현재 전국 1만2167개 학교에 배치된 전문상담 인력은 7417명 수준인데, 앞으로는 모든 학교에 상담 인력이 배치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학생이 많은 학교에는 추가 배치도 검토한다. 또한 고위기 청소년 지원을 위한 전용 병동 설치와 병상 확충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 실행을 위해 재정과 지원 인력도 확대한다. 학생 마음건강 지원 예산을 현재 보통교부금 총액의 0.25% 수준에서 2030년 1%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교육지원청 전담 인력 약 200명을 배치한다. 또 2016년부터 10년치 통계를 분석해 청소년 자살 사망자의 특성에 대한 심층분석 기반도 마련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학업 스트레스와 입시 경쟁이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인정했지만, 이번 대책에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청소년 자살의 원인 중에는 학업 스트레스도 적지 않지만, 사회 전반의 구조와 가정에서의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교육정책적인 부분은 별도의 정책을 통해 노력해 나갈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범정부 차원에서의 다양한 방안이 열거됐지만 교육계 안팎에서 근본적 처방이 부재한 ‘보여주기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논평을 내고 “극한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상담과 치료, 위기학생 관리 대책 확대에 그쳤다”며 “입시 경쟁 완화, 학교 공동체 회복, 정서위기 학생 지원 체계 구축이라는 근본 과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