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참정권을 요구해 온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한 주민센터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를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박연지씨(33) 제공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점화된 ‘참정권 침해’ 논란이 연일 확산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이번 선거에서 처음 체감한 참정권 침해 문제가 자신들에게는 오래 반복돼 온 일상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문제는 열악한 ‘정보 접근성’이다. 투표에 앞서 후보자와 공약을 확인하는 과정부터 장애 유형별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9일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박연지씨(33)는 “공약집에 어려운 단어가 많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센터 직원에게 단어 뜻을 물어보며 공약을 확인했다”며 “누군가의 설명에 의존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농인인 우지양 ‘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역시 “비장애인은 혼자 쉽게 접하는 정보를 농인은 다른 사람을 거쳐야만 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집으로 전달되는 공보물로도 정보 파악이 쉽지 않다. 중증 시각장애인인 정승원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장대넷) 공동이사장은 “점자 공보물과 USB 공약 자료가 투표 전날 도착하거나 선거가 끝난 뒤 도착한 적도 있었다”며 “직접 알아보지 않는 이상 정보 접근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비례대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선거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투표소 현장에서 겪는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본인확인->투표용지 수령->기표’로 이어지는 투표 과정 자체가 복잡하게 느껴지는 문제다. 투표용지의 이름과 기호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 중증 발달장애인인 김대범씨(33)는 “이번 선거는 특히 후보자가 많아 더 어려웠다”며 “투표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정 공동이사장은 “점자필(점자형 기표보조도구)이 있어도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보조인 동행이 가능한데도 어떤 곳에서는 안 된다고 하거나 가족만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투표소에서 내내 ‘장애인임을’ 입증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박씨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왜 도움이 필요한지부터 설명해야 한다”며 “투표하러 간 자리에서도 장애를 계속 증명할 수밖에 없어 힘들다”고 했다. 정 공동이사장도 “장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모든 시선이 쏠린다”며 “사회적인 인식이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파주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중증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투표 보조 과정이 지연되자 투표소 안내원이 “거소투표하면 되지 않느냐”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을지누리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장대넷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의 이해도와 경험에 따라 장애인 유권자들이 매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며 “선거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체감할 만한 개선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매 선거마다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장애인 단체 의견과 현장 사례를 반영해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며 “현장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대부분 지방공무원인 만큼 일부 현장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